2024.04.26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우리문화편지

창덕궁 가운데 유일하게 단청이 없는 낙선재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68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파랑빨강노랑흰색검정 등 다섯 가지 오방을 기본으로 사용하여 건축물에 여러 가지 무늬와 그림을 그려 아름답고 장엄하게 장식하는 단청은 궁궐 전각이나 절에만 있습니다. 단청은 단확(丹雘)단벽(丹碧)단록(丹綠)진채(眞彩)당채(唐彩)오채(五彩)화채(畫彩)단칠(丹漆)이라고도 합니다. 단청은 건축물을 오래 보존하고 그 건축물이 지닌 특수성과 위엄을 강조하는 것은 물론 통일성과 다양성을 주는 구실을 하지요.


 

그러나 창덕궁에서 유일하게 단청이 없는 건물이 있습니다. 바로 1847(헌종 13)에 중건된 낙선재(樂善齋)가 그곳인데 궁궐 건축물 가운데 사대부 주택형식의 건축물이지요. 헌종의 문집인 원헌고(元軒稿)에 있는 낙선재 상량문(上樑文)”을 보면 헌종은 정조를 이어받고자 하는 뜻을 담아 낙선재를 세웠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헌종은 낙선재를 짓고 죽기까지 낙선재를 주요 활동공간으로 삼으며, 규장각을 세운 정조의 개혁정치를 본받으려 한 것입니다.

 

낙선재는 국권을 빼앗긴 조선 황실의 마지막을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한데, 특히 황실 여인들이 최후를 마친 곳으로도 유명하지요. 낙선재는 1884년 갑신정변 직후 고종이 이곳을 집무실로 사용했음은 물론, 순종은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이후인 1912년부터는 주로 낙선재에서 거주하였습니다. 1963년 환국한 영친왕 이은(李垠)1970년 낙선재에서 생을 마쳤고 마지막 황실 가족인 덕혜옹주와 이방자 여사는 1989년 열흘 사이로 낙선재에서 눈을 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