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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나라 잃은 통분을 순국 자결로 저항한 '이근주' 지사

[신한국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운이 다하였으며 성인의 도가 끊어져 살아갈 마음이 없다. 일본한테 나라를 빼앗긴 것은 너무나 분통하고 부끄럽고 또 싫어서 죽을 수 밖에 없다.” 이는 국치일을 당하자 순국 자결한 이근주 지사가 자결에 앞서 한 말이다.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이근주(1860~1910)지사는 나라를 잃은 통분을 순국 자결로 일제에 항의했다. 충남 홍성이 고향인 이근주 지사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에 항거하여 일어난 홍주의병에 참여하였으며, 1910년 경술국치의 비보를 접하자 자결로 항거했다.


    

 

이근주 지사는 김복한, 안병찬 등과 함께 홍주의병에 참가하였는데 김복한 등 주도자들이 체포된 뒤, 조의현 등과 재기를 시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때 울분에 쌓인 선생은 천식과 다리가 마비되는 병을 얻고 말았다.

 

이근주 지사는 여러 항일 사적을 편찬하였는데 홍주의병 과정을 기록한 을미록, 나라가 매군매국(賣君賣國)의 무리에 의해 더럽혀짐을 한탄한 절의가, 민영환 선생의 순국을 기린 <혈죽시> 등 여러 항일 기록들을 남겼다.

    

 

이근주 지사는 50살이 되던 해인 19109, 큰형의 환갑이 지난 뒤 부모의 무덤에 가서 제사를 올리고 순국 자결의 길을 걸었다. 정부는 선생의 충절을 기리어 1991, 이근주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으며 201711월의 독립운동가로 뽑아 그 공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