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화)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우리문화편지

고려시대 청백리 최석과 여덟마리 말의 ‘팔마비’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69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전남 순천시 영동 1번지에는 여덟 마리의 말을 나타내는 팔마비(八馬碑)가 서있습니다. 순천지역에서는 꽤 이름난 이 팔마비는 우리나라 역사상 지방관리의 선정(善政)과 청렴결백의 효시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비석이지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된 팔마비는 고려 말의 청백리 최석(崔碩)의 송덕을 기리는 기념비입니다. 고려사고려열전 권121에는 양리(良吏), 최석이라는 이름으로 최석이 승평부사가 관례대로 받던 말 8필을 거부하다.”라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최석(崔碩)은 충렬왕 때 사람이다. 과거에 급제한 후 거듭 승진하여 승평부사(昇平府使)가 되었고, 임기를 마치고 개경으로들어와서는 비서랑(秘書郞)이 되었다. 승평부(지금의 순천)에서는 관례상 태수(太守)가 돌아갈 때면 반드시 말 8필을 주고, 부사(副使)에게는 7, 법조(法曹)에게는 6필을 선물로 주면서 마음대로 고르게 하였다. 최석이 교체되어 돌아가게 되자 고을 사람들이 말을 바치며 좋은 것을 고르라고 하니, 최석이 웃으면서 말은 개경까지만 타고 갈 수 있으면 되는데, 무엇 때문에 고르겠는가?’라고 하였다.

 

집에 도착한 후에 그 말을 돌려보내니, 고을 사람들이 받으려 하지 않았다. 최석이 또 말하기를, ‘내가 너의 고을에 수령으로 있을 때 내 말이 새끼를 낳아 데려왔는데 이는 나의 탐욕이다. 너희들이 지금 그러한 나의 탐욕을 알고서 겉으로 사양하는 것인가?’라고 하면서 그 망아지까지 주었다. 이로부터 말을 바치는 폐단이 끊어졌다. 고을 사람들은 송덕비를 세웠고, 팔마비(八馬碑)라고 불렀다.” 내용이 조금 길지만, 청백리 최석을 이해하기 좋은 기록입니다. 팔마비는 정유재란 때 파괴된 것을 1617(광해군 9) 승주부사 이수광이 복원하여 현재에 이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