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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윤두서의 노승도(老僧圖)와 전복 껍데기 가루

[큐레이터 추천유물 49]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윤두서(尹斗緖, 1688~1715)가 그린 <노승도(老僧圖)>는 신선이나 불교의 고승, 나한 따위 인물을 그린 그림[道釋人物畵] 가운데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비스듬히 구성한 공간에는 두꺼운 장삼(長衫)을 걸친 노승이 오른손에 긴 지팡이를 짚고, 왼손에는 염주를 쥐고 맨발로 비탈길을 걸어가는 모습과 성근 대나무와 잡초가 간략하게 표현되었습니다. 노승의 얼굴이나 손과 발은 섬세한 필치로 묘사한 데 견주어 옷 주름과 지팡이는 짙은 먹으로 거칠게 붓질한 선종화풍(禪宗畫風)으로 그렸습니다. 대조적인 필치와 안면의 표정이나 세부 묘사는 마치 어느 노승의 초상화를 보는 듯합니다.

 

<노승도(老僧圖)>의 바탕 종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매우 매끄럽고 광택이 있으며 옅은 은회색을 띠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탕 종이는 은가루[銀粉]를 바른 은종이[銀紙]로 알려져 왔습니다.




은종이[銀紙]가 아니었다

 

옛 그림의 정교하고 세밀한 선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바탕 종이와 붓이 중요합니다. 종이가 거칠고 치밀하지 못하면 먹을 쉽게 머금고 번져 세밀한 선의 표현이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예부터 희고 매끄러우면서 치밀한 종이를 좋은 종이로 여겼습니다.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우리의 옛 종이는 섬유가 굵고 길어 종이를 뜨면 표면이 거칠고 보풀이 많습니다. 그래서 매끄럽고 치밀한 종이를 만들기 위해서 한 번 더 표면처리를 하였습니다. 다듬잇돌 위에 젖은 종이를 여러 장 겹쳐놓고 두드리는 도침(搗砧)이 대표적인 표면처리 방법입니다. 이 밖에도 종이 표면에 기름, 아교, 전분 또는 금(), (), 운모(雲母), 조개껍데기 따위를 발라 표면을 처리하기도 하였습니다. 윤두서가 활동하였던 18세기 초 우리나라에서 금지(金紙)와 은지(銀紙)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은 다른 금속에 견주어 상대적으로 부식이 느리고 안정적이지만 자연 환경 속의 황 등과 반응하여 황색, 다갈색, 흑색으로 쉽게 변합니다. 따라서 바탕 종이에 은을 발라 표면처리를 하였다면 현재 화면이 짙은 회색 등으로 변색되었을 것입니다. <노승도(老僧圖)>의 바탕이 변색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보존되는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표면의 성분을 분석하고 확대 관찰하였습니다.

 

그 결과, 종이 표면에서 광택을 발하는 다각형으로 조각난 미세한 입자들이 관찰되었습니다. 또한 현재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은(Ag)이 검출되지 않고, 칼슘(Ca)과 철(Fe)이 검출되었습니다.




<노승도(老僧圖)>의 바탕 종이, 전복껍데기 가루 바른 것

 

<노승도(老僧圖)>의 바탕 종이가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달리 은종이가 아니라는 것이 성분 분석과 확대 관찰로 확인되었습니다. 조사 결과와 같이 칼슘(Ca)과 철(Fe)을 포함하면서 종이의 첨가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조개껍데기 가루입니다.

 

<노승도(老僧圖)> 바탕에 쓴 조개껍데기 가루를 알아보기 위해 홍진주 껍데기, 전복 껍데기 등 5종류의 조개껍데기를 곱게 갈아 실제 종이에 발라 관찰하였습니다. 실험에 사용한 홍진주 껍데기 등 4종은 껍질이 얇고 부드러워 가루가 되었을 때 다각형으로 조각난 입자를 확인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전복 껍데기를 곱게 조각내어 바르면 다각형으로 조각난 입자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서유구(徐有榘)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서 종이에 첨가물을 바르는 두 가지 방법을 설명하였습니다. 첫째는 종이에 아교와 명반을 바른 뒤 금가루 등을 체로 걸러서 뿌린 다음 눌러서 평평하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아교와 명반을 바른 뒤 미세한 분을 갈아 아교와 섞어 바르는 것입니다. <노승도(老僧圖)>에 남아 있는 넓은 붓 흔적으로 보아 전복 껍데기를 곱게 조각내어 아교와 섞어 종이의 표면에 바른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윤두서가 말년을 보냈던 해남 완도 지역은 지금도 전복의 산지입니다. 다른 지역보다 전복 껍데기를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처럼 독특한 종이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와 유사한 종이로 해남 녹우당 소장의 윤씨가보(尹氏家寶),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적표마도(赤驃馬圖)>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