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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어느 기록화에서도 볼 수 없는 임금의 모습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695]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조선시대 왕실의 혼례 모습은 가례도감의궤의 반차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의 반차도이지요. 이 반차도에서 특히 눈여겨 볼 것은 임금과 왕비의 가마입니다. 그 까닭은 임금의 가마는 사방이 열린 개방형으로 누구나 볼 수 있다는 것이고, 왕비의 가마는 사방의 문이 모두 닫혀 아무도 볼 수 없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더더욱 재미난 것은 임금의 가마에 임금이 없습니다. 그저 가마만 그리고 그 안에 사람은 없는 것이지요. 이 그림 말고도 영조가 청계천의 준천 사업을 둘러보러 간 모습을 그린 <준천시사열무도>, 영조가 신하들과 함께 성균관에서 활쏘기 행사를 한 <대사례도(大射禮圖)>, 1795년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맞이하여 화성행차의 과정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반차도>,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의 입학식 광경을 그린 <왕세자입학도> 등의 그림에서도 임금의 가마나 말만 보일뿐 임금의 모습은 볼 수 없습니다.

 

이는 애초에 임금의 모습을 그리지 않았던 것인데 그 까닭은 임금의 얼굴을 조선왕실의 어떤 행사 기록에도 남기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임금은 절대적인 위치에 있어 존엄한 것이지요. 대신 임금의 모습은 당대 최고의 화원들이 어진(御眞)을 그려 선원전(璿源殿)에 보관했습니다. 다만, 대부분의 어진이 불에 타고 남은 것은 태조, 영조, 철종, 고종, 순종 다섯 명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