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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종승의 무속신앙 이야기

은산 별신제의 진대 베기와 세우기

양종승의 무속신앙 이야기 (10) - 은산 별신제 4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진대는 마을이나 일 또는 집 등의 공동체, 노동, 삶을 일구는 특정 구역 지킴이의 뜻 지기와 이를 상징하는 물체로써 하늘로 기다랗게 솟구친 막대기의 와 합성된 용어이다. 터를 지키는 깃대가 하늘을 향해 신당 앞에 세우는 것은 곧 영적 존재가 군림하는 천상과 연결됨을 뜻한다.

 

하늘은 우주를 주재하는 초자연적 존재가 다스리는 무한대의 영적 공간이기에 땅이 하늘과 소통하려는 것은 이러한 천상의 영적 기운을 인간 삶에 끌어들이기 위함이다. 상대적으로, 하늘 또한 무한한 기운을 받아 생동감을 갖는 땅의 존립으로부터 존재 가치를 갖는다. 이러한 원리를 기반으로 땅과 하늘은 병립적 관계 하에 서로 협력 협조 협심 협동하며 인류 삶의 구심점과 원동력으로 역할하게 된다.

 

이와 같은 진대는 지역에 따라 짐대, 수살, 수살막이, 수살잇대, 수살목, 액맥잇대, 장승, 벅수, 솟대, 조간(鳥竿) 등으로 불린다. 수살, 수살막이, 수살잇대, 수살목이라고 부르거나 또는 액맥잇대라고 한 것은 이 대가 살을 막아 내거나 액을 막는 역할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장승이나 벅수 는 마을이나 공동체 고개 또는 절간 들머리 등지에 세워져 있으면서 터의 수호신 역할을 한다.

 

그러면서 혹여 라도 닥쳐올지 모를 좋지 못한 해로운 나쁜 기운을 사전에 제압하고 마을 공동체와 각 가정의 풍농과 풍어를 주는 신앙의 대상물로 여겨져 의례가 성행하여 왔다. 그러면서 지역 단합을 비롯한 각 개인의 부귀, 영화, 건강, 장수 등의 소망을 이루어 주는 일종의 공동체 신앙으로 지속되어져 온 것이다.


 

이러한 장승에 대한 역사적 흔적을 보면, 삼국유사(三國遺事)4, 보양리목조에 청도 운문산 선원의 장생이 있었고, 조선 전기 성현의 용재총화(慵齋叢話)5권에 길가에 장생이 있었으며, 증보 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24권 여지고 도리조에 돌로 된 석장생(石長栍)이 있었다. 한편, 이와 같은 세우기 풍습은 시대를 거치면서 특정 지역의 지리적 및 지형적 결점을 보완하기 위한 목적으로도 활용되어 왔다. 그것이 비보풍수의 한 면이다. 곧 지세를 안정시키기 위한 목적으로도 쓰인 절의 당간지주(幢竿支柱)가 그것이다.

 

진대의 또 다른 형태로써 청동기시대에 기원을 두고 있는 조간(鳥竿)은 새 모형의 기라란 장대를 높이 세워 제의 대상물로 삼았다(박호원, 솟대信仰硏究한국정신문화연구원 석사학위논문 1986). 이러한 형태와 같이, 기다란 대, 곧 짐대 또는 진대는 고려조 청산별곡(靑山別曲)’과 나옹화상(懶翁和尙)서왕가(西往歌)’에서 말한 것과 같은 솟대의 별칭이다.

 

이는 하늘로 치솟고자 하는 한국인의 천신신앙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기에 솟대는 곧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매개체로서 역할을 한다. 이로써 인간 의지가 하늘에 닿고 하늘의 기운 또한 인간 삶에 스며들게 하려는 일종의 천지합일사상이 창출되기도 햐였다. 현실적 삶이 이상세계와의 합일을 갈망하는 한국인의 종교심성이 표출되고 있는 것이 바로 솟대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솟대문화를 기반으로 발전된 것이 바로 솟대쟁이가 하늘로 높이 솟은 기다란 솟대 위로 올라가 온갖 재주를 부리는 이른바 솟대쟁이패 연희라 할 것이다. 이러한 솟대는 삼한(三韓)시대 때부터 세워졌었다. 삼국지(三國志)』「마한전(馬韓傳)이나 후한서(後漢書)』「마한전을 보면, 소도(蘇塗)라 부르는 별읍(別邑)이 있었고, 여기에 나무를 세워 방울과 북을 매달아 귀신을 섬겼다고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소도가 솟대라는 뜻뿐만 아니라 마을 곧 별읍(別邑) 개념으로도 인식되었던 것이다.

 

소도와 동일 계통의 진대 역시 그 역사가 혈연적 공동사회를 이루었던 부족국가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손진태, 조선민족문화의 연구을유문화사 1948). 그리고 진대는 역사적 전개 속에서 다양한 지역적 유래와 함께 개성 있는 형태와 역할을 갖고 전승되어져 왔다.

 

이들 가운데 강원도 대관령의 한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 어느 날 대관령으로 떠내려 온 짐대가 강문에 닿자 마을 사람들이 이를 건져 세우고 제사를 올렸더니 동네가 번성하여 이를 계속 모시게 되었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짐대가 마을에 혹여 라도 닥쳐올지도 모를 수재, 풍재, 화재 즉 삼재(三災)을 막아 준다고 믿게 되었다. 사람들이 짐대를 잘 모시지 않고 소홀히 하게 되면 논농사를 기대할 수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늘 진대를 경외시하면서 잘 모시게 되었다(김선풍, 이기원, 민간신앙,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 강원도편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7).

 

은산 별신제에서의 진대는 제의 둘째 날 오전 하당굿 터에 모군석(募軍席)을 설치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의미를 드러낸다. 대장이 명을 내리면 사명집사, 선배비장, 중군, 영장, 후배비장, 좌수, 별좌 등이 모여 들어 모군석에 좌정한다. 이 후 진대 베기를 알리면 대열에 맞추어 진대가 있는 산으로 출발한다. 진대는 은산리 주변 20리 이내에 있는 산에서 모양새가 좋은 어린 참나무로 미리 선정해 둔다.



진대로 삼을 나무가 있는 산 주변의 마을 사람들은 운이 좋다고 기뻐한다. 진대 벨 일행이 산으로 행군하는 도중 널따란 터가 나오면 풍물을 울리면서 오방돌기를 한다. 동서남북 사방에 진()을 쳐 방위신을 모시고 용맹한 군사력을 과시하여 그 위엄을 나타내면서 동시에 진대를 향해 가는 일행들의 무사를 빈다.

 

일행이 진대 앞에 당도하면 풍물대의 쇳소리와 가죽소리로 예를 갖춘다. 나무에 세 번 절을 올리면서 고개 세 번을 끄덕거려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를 한다. 그러면서 진대가 영검한 신의 몸체로 구실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 한다. 이러한 제례 형식은 마을의 당 앞에서 행해지는 고두백배(叩頭百拜)’와 더불어 은산별신제에서 만이 독특하게 행해지고 있는 지역적 제례 형식이다(이필영, 은산별신제」『비교민속학13, 1996).

 

일행은 진대로 삼아질 4개의 참나무를 베어 윗부분만 남겨두고 가지와 잎을 모두 제거한다. 잘 다듬어진 진대를 모시고 하산한다. 하산 길에도 흥겨운 풍악을 울려 진대를 내준 산에게 감사하면서 흥을 돋운다. 진대베기 일행이 마을에 당도하면 승마 임원과 병졸들이 집결한다.

 

풍물패와 제관들 그리고 무녀들이 모두 별신당 앞에 모이면, 당주 무녀는 홍천릭을 입고 흰 깃털이 꽂힌 빨강모자를 쓴다. 아침 일찍 목욕재계 한 화주(化主)와 대장(大將)이 쌀을 수북이 담은 대살바지[쌀바가지]에 세워둔 농기(農旗 또는 신장대기-神將大旗라고도 함)를 잡고서 신내림을 한다. 이 때에 당주무녀가 삼현육각에 맞춰 춤을 추며 무가를 읊는다. 그리고 화주와 대장이 잡은 농기가 빨리 강신될 수 있도록 축원하면서 빈다.

 

한참 후 강신되어 농기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꿩장목에 메달아 놓은 방울이 소리를 내면서 농기가 요동을 친다. 드디어 강림이 이루어지면 화주와 대장이 농기를 붙들고 펄쩍 펄쩍 뛰면서 춤을 춘다. 강신이 마무리되면 화주와 대장은 본래 정신으로 돌아오고 농기는 별신당 앞에 세워둔다. 이로써 천지합일이 이루어졌음을 풍물을 울려 알린다.

 

이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별신이 강림하였음을 알고 별신당과 농기를 향해 절을 하면서 소원성취를 빈다. 이후, 별신제가 모두 마무리되는 날 진대는 은산리 구역을 의미하는 마을 네 곳에 세운다. 이로써 마을 사람들은 좋지 못한 해로운 기운이 마을로 침입할 수 없다고 믿는다.

 

신과의 연결통로를 상징하는 이러한 대 베기 및 세우기는 은산을 비롯한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전승되어 왔다. 이를테면, 강원도 강릉에서 단오굿을 하기 위해 대관령에서 신목 모시고 오는 의례가 그것이다. 단오굿이 시작되기 전 음력 415일 제관들과 무당 일행, 시민들이 제물을 장만하여서 대관령으로 올라가 국사성황께 제를 지낸 후 단풍나무로 된 신목을 찾는다. 무당 축원이 이루어지면 신목 베어 모시고서 굿청으로 내려온다. 이 때 사람들이 앞 다투어 신목에 오색 헝겊으로 된 예단을 건다. 여기서의 신목은 국사성황을 상징하는 신 그 자체이다.


 

서울 이태원 부군당구에서도 대내림하기 위해 당굿을 하는 날 아침 일찍 목욕재계한 후 남산으로 올라가 동쪽으로 뻗은 소나무를 꺾어서 신대로 사용한다. 신대 아래 부분에 하얀 한지를 씌어 옷을 입힌 후 쌀을 수북이 담은 양푼에 꽂아 당주가 대를 잡고 대내림을 한다. 강신이 되면 당주가 대를 붙잡고 뛰면서 춤을 추다가 서낭당으로 가서 공수를 내리고 신대를 세워둔다(양종승, 서울 이태원 부군당굿민속원 2007).

 

풍어를 바라는 어촌의 별신굿에서도 굿청 앞에 신대를 세워두고 강신하는 대내림을 한다. 이와 같은 진대 또는 신대를 활용한 의례 목적에는 윤택해지려는 인간 삶을 담보하는 공리성이 전제되어 있다. 신과 인간과의 소통을 통한 화합의 장을 모색케 하여 좋은 기운과 이로운 서슬을 끌어 들여 삶에 보탬 될 수 있는 이로운 에너지를 창출 시키는데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진대를 세우고 내림을 통해 강신을 하는 것은 나쁜 액을 쫓고 해로운 기운을 없애며 좋지 못한 부정적 잡귀와 잡신을 몰아냄과 동시에 좋고 이로운 기운에 의한 명복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궁극적으로 삶이 영위되는 지상이 하늘과 연결되어져 신과의 교감대를 형성하고 인간들의 소망하는 바를 얻고자 함이다.

 

그리하여 마을과 마을 사람의 제액을 물리치고 마을 안녕과 풍농, 풍어 그리고 각 개인의 안녕을 기원하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제의 구조를 바탕으로 하는 은산 별신제에서 행하는 진대 베기와 세우기는 고대사회로부터 있어 온 대규모적 제천의례에 뿌리를 두고 있는 신인합일사상(神人合一思想)에 근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