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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장악원 제조가 썼던 도장, ‘장악원제조인’

[수장고 속 왕실 유물 이야기 12월]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이 사각형 구리 도장의 인면(印面)에는 장악원제조인(掌樂院提調印)’이라는 글자가 전서체로 새겨져 있습니다. 조선시대 궁중의 음악과 무용을 관장하던 장악원의 고위 관원인 제조가 사용하였던 인장이라는 뜻입니다.

    

 

국립고궁박물관에는 조선전기부터 대한제국 시기에 이르기까지 사용되었던 여러 종류의 관인(官印)이 남아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각 관아에서 발급한 문서에 공적인 효력을 부여하기 위하여 관인을 사용하였는데, 장악원제조인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도장에는 장악원제조인말고 다른 글씨도 눈에 띕니다. 도장의 윗면에 가는 선으로 새겨진 3행의 글자입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홍치 79월에 만들어 1126일에 쓰기 시작함. 장악원제조[弘治七年九月日造 十一月二十六日行用 掌樂院提調].”

이 명문에서 도장이 만들어진 정확한 연도를 알 수 있습니다. 명 홍치 7년은 1494년으로 조선 성종 25년에 해당합니다. 당시 장악원의 제조를 맡고 있었던 것은 유자광(1439~1512)과 성현(1439~1504)이었으니, 이들이 이 인장을 사용하였을 것입니다.

조선시대 여러 아문[各司]의 제조는 긴급한 사무를 직접 보고하거나 인사고과 등에 참여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장악원의 제조는 음률을 이해하는 자가 맡아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1493(성종 24) 여름, 음악 이론에 능통하였던 성현이 경상도관찰사로 임명되어 떠나게 되자, 함께 장악원 제조를 맡고 있던 유자광이 성종에게 달려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장악원의 제조는 음률을 잘 알아야만 악공을 선발할 때 그 기량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역대로 반드시 음률을 잘 아는 자를 뽑아 임명하였습니다. 경상감사는 다른 사람이 할 수 있지만, 장악원의 제조는 성현이 아니면 불가합니다.” (성종실록281, 성종 2483)

성종은 이 말을 듣고 성현을 예조판서로 고쳐 임명하고, 장악원제조직을 겸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현은 악학궤범(樂學軌範)편찬, 악기 수보 사업 등 성종 시대의 예악정치와 관련한 중요 사업들을 이끌게 됩니다.

그러나 이 도장이 만들어진 해 겨울, 성종은 세상을 떠나고 세자 연산군이 즉위하면서, 장악원의 역할도 큰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즉위 초기 성종을 이어 임금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려 하였던 연산군은 점차 정사를 멀리하고 사냥과 연회 등에 몰두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총애하는 임숭재(任崇載, 임사홍의 아들) 등의 신하를 장악원 제조에 임명하고, 악공과 기생을 모아 임금의 잔치에 이바지하게끔 하였습니다.

이때 기녀를 모아 들여 흥청(興淸)’, ‘운평(運平)’ 등의 이름을 붙여, 장악원에서 음악과 춤을 연습하게 하였습니다. 운평의 수는 수천을 헤아렸다고 하며, 흥청 가운데서도 왕의 승은을 입은 이를 천과 흥청(天科興淸)’, 승은을 입지 못하고 왕을 가까이서 모시는 흥청을 지과 흥청(地科興淸)’이라고 불렀습니다. 성종대 각종 제사와 공적 진연을 통하여 유교적 국가의 체모를 갖추려 하였던 노력과 달리, 연산군 시대의 장악원은 왕의 일탈을 상징하는 관서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남아 있는 장악원제조인은 바로 이러한 시대를 겪어온 유물입니다. 악학궤범이 만들어진 성종시대의 마지막과 연산군 시대 장악원의 변질이라는 극적인 역사를 지켜본 증인이라 할 수 있겠지요.

                                                                  박경지 (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