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우리문화편지

1888년 오늘 한글학자ㆍ독립운동가 이윤재 선생 태어나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716]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일제강점기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은 한 음식점의 방명록(錦書集)한글이 목숨이라는 글을 써놓았습니다. 일제가 일본어를 국어라 하고, 우리말글을 쓰지 못하게 하던 시절에는 우리말과 한글을 쓴다는 것이 바로 독립운동이었고 목숨을 건 일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우리말과 한글을 위해 온갖 고초를 겪어가며 노력한 분들은 주시경 선생을 비롯하여, 최현배, 정인승, 이극로, 김윤경 선생 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 말고도 이윤재(李允宰, 1888. 12. 241943. 12. 8) 선생도 있었지요. 선생은 1888년 오늘(1225) 경남 김해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한뫼입니다. 1919년 평안북도 영변의 숭덕학교에 재직 중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선생은 이 지방의 만세시위운동을 앞장서 계획하고 주도하였습니다. 또 신채호 선생의 영향으로 역사를 공부한 뒤 이승훈 선생이 세운 정주 오산학교 등에서 민족교육에 앞장섰으며, 일본인들의 식민사관에 저항하여 역사학술단체인 진단학회도 설립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선생은 1927조선 사람에게는 조선말 사전 한 권도 없음을 통탄하면서 조선어학회의 전신인 조선어연구회에 가입하여 조선어 사전 편찬 활동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그러나 선생을 비롯한 사전 편찬 사업에 밤낮으로 종사하던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1942년 일제 형사들에게 체포되어 치안유지법 제1조의 내란죄를 지었다는 명분으로 온갖 고문을 받았습니다. 결국 선생은 일제의 고문으로 말미암아 1943128일 새벽, 함흥감옥의 차가운 시멘트 독방에서 55살의 나이로 순국하고 맙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