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박연(朴淵)은 세종 때 아악을 정리한 박연(朴堧)과는 다른 사람이지요. 그는 1627년, 정묘호란이 끝난 직후 표류하다가 제주도에 당도했던 네델란드 사람 벨테브레이(Jan J. Weltevree)로 나중에 박연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박연은 청나라로 보내진 다음 자기 나라로 찾아가도록 해야 했지만 정묘호란 직후라 그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조선에 남게 된 그는 대포를 만들 줄 아는 덕분에 훈련도감에 근무하게 했지요. 이후 박연은 조선 여인과 혼인해 자식을 낳은 다문화가정을 꾸렸습니다.
그런데 《석재고(碩齋稿)》에 나오는 내용을 살펴보면 재미난 내용이 있지요. 바로 조선시대에도 외인부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시는 임진왜란 때 조선에 투항한 일본군이나 표류해온 중국인을 훈련도감에서 박연이 거느렸다는 것은 외인부대를 말한 것이지요. 특히 임진왜란 때 검술이 뛰어난 왜장급의 일본군이 많이 투항해왔고, 그 가운데 “김충선(金忠善, 일본이름 사야가-沙也加)”은 정유재란 때 다른 항복한 왜장들과 의령전투 등에 참가하여 큰 공을 세웠습니다. 항왜 김충선은 유광남 작가에 의해 《사야가 김충선(스타북스)》이란 소설로 태어나기도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