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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종승의 무속신앙 이야기

큰굿을 할 때는 전문 화공을 불러 지화를 만든다

양종승의 무속신앙 이야기 (13) - 은산별신제7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화공은 꽃 제작뿐 아니라 신도(神圖)를 꾸미고 굿에 쓰이는 장식품을 제작하는 무속세계의 종이 다루기 전문가이다. 화공의 꽃일은 굿판 외에도 사대부집 큰 잔치나 장례식 또는 절간의 재에서도 이루어졌었다.

 

이를 테면, 황해도 화공으로 이름 석 자를 날렸던 배문일(, 1900~1992)은 황해도 연백출신으로 한국동란 때 남하하여 1980년대 까지도 황해도 무당들을 대상으로 화공을 일을 하였던 인물인데 젊은 시절 사대부집 큰 잔치에 불려가 상화를 제작하였고 장례식에 필요한 꽃이나 절간의 장엄지화를 제작하였다고 증언하였다.

 

이와는 달리, 절간에서 화만(華鬘, 불전공양에 사용되는 꽃다발)을 제작하였던 스님들 또한 무속의례에 사용된 신화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은산 별신제에서 사용되는 신화를 근래에까지 인근 절에 부탁을 하였다고 한 점에서 알 수 있다. 1988년 당시 은산에서 장의용품을 판매하는 홍용포씨(71)가 굿에 사용되는 신화를 제작하고 있었는데, 20~30여 년 전에는 마을 주민인 최왕대, 윤삼봉이 만들었으며, 그 윗대로 올라가면 절에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로보아, 1950대 전까지는 스님들이 무속 꽃을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근래에는 여자도 화공을 하지만 본디는 여자가 화공일을 하면 부정 탄다고 믿었기 때문에 주로 남자가 하였다. 그리고 꼭 그렇지는 않지만, 대체적으로 화공일은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혈연적 대물림에 의한 세습적 직업으로 인식되어져 어려서부터 보고 배우게 하여 화공일의 전승을 지속시켜 왔던 것이다. 이러한 화공은 의례에 사용하는 여러 가지 꽃 제작은 물론이고 더불어 사용되는 장엄이나 장식구 제작에도 전문 장인이어서 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큰굿을 하게 되면 으레 전문 화공을 불러 꽃을 제작하였는데 무당집에 불려가는 화공은 무속의례에 박식한 사람이어야 되었다. 은산에서도 별신제 꽃을 제작하였던 최왕대 윤삼동 등의 화공들도 굿에 대해 많은 지식을 알고 있었던 장인들이었다. 이들이 제작하는 모든 꽃은 정결한 곳으로 정하여 꾸민 화방에서 이루어진다.

 

화공은 꽃일을 하기위해 전날 밤 목욕재계하고 무당이 주관하는 소찬음식의 소치성을 드린다. 꽃일을 하는 동안에는 누린 것 비린 것을 삼가며 정갈하게 행동할 뿐만 아니라 바깥출입을 금한다. 모든 마음이 신령에게 바치는 꽃에 집중되도록 노력하며 공을 들인다. 굿 주최측에서는 화공이 편히 꽃을 제작할 수 있도록 정성껏 대접하며 관심을 갖는다.

 

은산별신제에 진설되는 모든 꽃은 원칙적으로 종이로 제작되는 것이 원칙이다. 천이나 플라스틱을 사용하여 만드는 것도 있지만 그것들은 근래의 일이고 원칙적으로는 종이로 손수 만든 지화이다. 의례에서 종이로 만든 꽃을 사용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 종이꽃은 신앙 대상과의 연관 속에서 쓰이는 꽃이다. 따라서 대상신을 모시는 제단에 오를 수 있으려면 제작된 꽃이어야만 가능하다. 이를 테면, 꽃송이를 정해진 수에 맞춘다던지 꽃의 크기를 조절해야 한다든지 하는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의례에서 필요로하는 꽃은 대체적으로 상징성을 동반하고 있는 신앙적 꽃이기 때문에 생화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꽃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꽃은 식물세계에서는 재배되지 않으며 오로지 가화를 통해서만 존재성을 갖고 있다.

 

셋째, 지화는 신앙 대상 및 의례형식에 맞도록 필요한 물감으로 채색할 수가 있다. 이러한 것은 오로지 제작되어진 꽃이 여야 가능다. 넷째, 지화는 계절에 상관없이 사시사철 사용되는 의례용이어서 언제 어디서나 필요에 따라 사용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지화는 생명력이 짧은 생화에 비해 오래시간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의례가 짧게는 3일 길게는 보름까지 이어지는 큰 규모로 진행될 때는 시들지 않고 지속성이 유지되는 지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섯째, 신앙용 지화는 의례 마무리와 함께 불태워진다. 종이꽃을 불사르는 것은 의례에 모셔 들었던 모든 신령들을 원 위치로 다시 돌려 보낼 뿐만 아니라 혹여라도 남아 있을지 모를 좋지 못한 해로운 액을 물리치고자 함이다.


 

이러한 신화(神花)는 꽃의 쓰임새가 신령과 커뮤니케이션을 이루기 위함일 뿐만 아니라 꽃 존재 자체가 곧 신령을 뜻하는 지극히 종교신앙적 꽃이다(양종승, 최진아, “서울굿의 신화(神花)” 한국무속학 2002 4: 63-100).

 

복신장군(福信將軍)과 토진대사(土進大師), 산신 등을 모시고 치러지는 은산 별신제는 지역민들이 자발적으로 추렴한 재정으로 이루어진다. 별신제 중 하당굿 하는날을 별신 내리는 날이라 하고 갖가지 음식을 장만하여 신에게 바치고 악가무극을 동원한 연희를 행하여 좋지 못한 해로운 액을 물리치고 이롭게 좋은 현세적 길복을 추구한다. 이를 통해 숭신관(崇神觀)과 제화초복(除禍招福)을 알아 볼 수 있다.

 

유무형 문화가 총체적으로 결집된 전통문화집합체로써의 충청지역의 대표적인 대동제로써 마을민들의 공동체 의식을 모색한다. 여기서 공동체란 문화적 유형이 공공성을 기반으로 공유되어지는 사회적 망을 말한다. 망에는 도덕과 윤리를 갖춘 규율과 규칙이 존재하고 특수성이 보장되며 사회적 규범으로 지속성을 유지하게 된다. 이러한 공동체 의례로 행해지는 은산 별신제는 지역성을 유발하고 지역의 정체성을 표출하게 되며 별신제 전승자의 경험과 지식으로 무한한 지역의 무형유산을 극대화 하게 된다.

 

은산별신제의 진대 베기와 세우기 그리고 꽃받이는 지역의례가 전승되는데 주요한 요소들이다. 진대를 베어 와서 신당에 세우는 것은 하늘과 연결 통로를 만들어 신과의 교감대를 형성하기 위함이다. 이로써 지역민들은 별신당과 신대 앞에서 소망하는 바를 빈다. 이러한 제의 형식은 고대사회로부터 있어 온 대규모적 제천의례에 뿌리를 두고 있는 신인합일사상(神人合一思想)에 근거하고 있다.

 

이와 같은 오랜 신앙행위를 통해 지역민들은 마을과 마을민의 제액을 물리치고 마을 안녕과 풍농, 풍어 그리고 각 개인의 안녕을 바란다. 한편, 신앙의례에서 지화(紙花)는 필요에 의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지는 조화(造花) 또는 가화(假花)이다.

 

은산별신제는 1930년대 전까지만 하더라도 매년 개최되었던 지역의례였지만(朝鮮<大板六村>, 1935, 84~88) 경비문제가 만만치 않아 오늘날에는 이태말미 삼년시력으로 치러지고 있다(釋尊祈雨安宅, 村山智順, 朝鮮總督府, 1938). 지역민들이 참여해야 할 의례 과정에서도 외부의 힘을 빌려야 가능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우만 보더라도 은산 별신제는 더 이상 지역신앙으로 존재되지 않음을 알게 한다(홍태한, 은산별신제 연구민속원, 2016, 109).

 

그래서 은산 별신제는 두 해를 지내며 재력을 충족시켜 삼년 되는 해에 열게 되었고, 그 의미 또한 변화되어 왔다. 과거의 경우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일주간씩이나 열렸던 대규모 행사였으므로 의례 내용 또한 풍부하게 전승되었다. 그러나 작금에 와서는 옛 형태만 간간히 유지할 정도가 된 것이 다. 산업화로 인한 마을공동체 붕괴 및 마을민들의 신앙 형태 변화 등이 큰 요인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오늘날의 은산별신제의 정체성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문제 제기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홍태한의 앞 글 110). 1996년 은산별신제가 지역의례로써 중요성이 크게 인정되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를 전승하고 있는 은산별신제보존회가 미래 국가 차원의 축제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은산별신제 정체성 확립과 존속 가치를 위한 신앙적 형태와 의미 그리고 역할 탐구에 주목해야 한다. (은산별신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