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대사성ㆍ지중추부사ㆍ대제학ㆍ대사헌 등에 올랐던 홍귀달은 목숨을 걸고 직언을 하여연산군이 자못 싫어하였습니다. 홍귀달이 상소를 올리면서 조금도 숨김없이 궁중 비밀까지 캐내고 풍자하였으니 결국 연산군은 그를 경기감사로 내쫓았지요. 그뿐만 아니라 무오사화 직전 열 가지 폐단을 지적한 글을 올려 간하다가 사화가 일어나자 좌천되었습니다.
더더구나 연산군은 홍귀달의 손녀딸이 용모가 출중하다는 소문을 듣고 궁에 들이라고 하자 홍귀달은 이를 거역하여 결국 장형(杖刑)을 받고 경원으로 귀양 가게 됩니다. 이때 그는 “내가 본래 함창 농사꾼에서 재상 지위에 올랐는데, 본래 내가 가졌던 것도 아니니 출세한 것도 아니요 실패한 것도 아니다. 다만 옛날로 되돌아 갈 뿐이니 무슨 원망이 있겠는가?”라면서 태연히 떠났는데 단천에 이르러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목숨을 걸고 직언하는 신하를 곁에 두지 않은 연산군은 결국 쫓겨나고야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