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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이연실 <찔레꽃>

[디제이 김상아의 음악편지 110]
향토색 짙은 노래에 각별한 애정을 보였던 이연실의 노래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밤이 짧아지고 있었다.
어느 샌가 휘파람새가 찾아와 오동나무 위에 앉아
밤마다 피리를 불었으나 하나도 아름답지가않았다.
벌써 신작로엔 모락모락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보릿고개. 그 지긋지긋한 보릿고개가 다가오고 있었다.
내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보릿고개만은 이곳에서 맞지 않으리라.

열여섯 이 꽃다운 청춘을 밭고랑에 파묻지 않으리라!


이제 곧 첫 닭이 울겠지.
새근새근 잠든 동생들을 뒤로하고 소리죽여 싸리문을 나섰다.
문 밖에는 분선이가 새파랗게 달빛에 젖은 채 서 있었다.
이 골 저 골에서 흘러내리는 시냇물이 우리의 발자국 소리를 묻어주었다.
서낭당까지라도 배웅 하겠다는 분선이를 간신히 달래고

보따리 하나 가슴에 안고 새벽길을 재촉했다.


눈물 따위는 시냇물에 떠내려 보냈다. 한숨도 떠내려 보냈다.
어제 장날, 한 달 내내 모은 달걀을 팔아서 벌은 지전 몇 장을

아버지 몰래 치마 춤에 꽂아주며 삼키던 엄마의 피 맺힘도,
아버지의 진가래 소리도 하얗게 떠내려 오는 산 벚 꽃잎 따라 흘려보냈다.
고생이 되더라도 가지 말고 같이 살자고 애원하며 잡은 손을 놓지 못하던 분선아.

단짝동무 분선아. 네가 두드려 빠는 개짐* 꽃물이 시냇물 따라 내 옆을 흐르는구나.
내 꼭 돈 많이 벌어서 부모님 논 사 드리고 동생들 공부 시키고

그땐 우리 다시 사이좋게 지금처럼 다정하게 살자.
여명을 헤치며 차부로 가는 길엔 찔레꽃이 무더기로 피어 새벽을 비추고 있었다.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정신을 차리라는 말을 되뇌어 보아도

나간 넋이 좀처럼 돌아오지를 않았다.
쉴 새 없이 빵빵거리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리는 자동차들에 넋이 나가고,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가는 사람들 무리에 넋이 나갔다.
커다란 산으로 우뚝 선 건물이 대왕코너라는 걸 알기 까지는 몇 달의 세월이 흘러야 했다.
뱃속에서 행주 짜는 소리가 들려왔다.

돈 아낀답시고 기차에선 그 흔한 찐 달걀 하나 사먹지 않았다.

맞은 편 좌석에서 곽밥* 이며 양갱이며 군입거리를 사먹는 모습을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해는 벌써 서 쪽으로 눕기 시작했다.
허기와 피로로 금방이라도 주저앉고 싶었지만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주소 하나만 달랑 쥔 채 구로공단에 있다는 외사촌 언니를 찾아 나섰다.

 

, 사장님. 죄송하지만 결재가...”

누구 하나 금방 숨 넘어 갈 일이 아니면 그냥 두고 나가세요.”

생산부장을 내 쫓듯 내보내고 다시 눈을 감았다.

얼굴에 마른버짐이 하얗게 핀 댕기머리 처녀가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청량리역에 첫 발을 디뎠던 40년 전으로 영상이 되감겼다.

외사촌 언니의 주선으로 봉제공장에 취직하여 첫 월급을 탔을 때의 감격,

회사의 배려로 야간학교에 진학하여 꿈에도 그리던 교복을 입었던 일,

반장으로 진급한 뒤 뒤늦게 대학에 입학하여 대기만성의 꿈을 착착 실현해 나가던 일...

 

그동안 피나는 노력도 있었으나 행운도 많이 따라 몇 번의 고비를 잘 넘기고

이제는 제법 탄탄하다는 중견기업을 이끌고 있는데도,

성공한 여성이라는 세평을 들으며 부족할 게 하나 없을 것 같은데도

왜 이리 그 시절이 그리워질까?

검붉은 찔레 순을 꺾어 허기를 채우던 시절이.

집안 어디를 둘러보아도 사탕 부스러기 하나 없던, 그래도 행복했던 그 시절이.

        

                     찔레 꽃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보는 꿈은 하얀 엄마 꿈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   

 

이연실의 낭랑한 목소리에 실려 사랑을 받은 찔레꽃은 이태선의 가을 밤”, 윤복진의 기러기”, 이원수의 찔레 꽃이렇게 세 편의 동시에서 가사가 발췌된 특이한 곡이다. 멜로디는 미국의 저, 유명한 작곡가 스테판 포스터(Stephan Foster)<Massa’s in cold cold ground)를 빌려왔다.

 

이연실은 1950년 군산에서 태어나 군산여고를 졸업하였고, 홍익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하였다. 70년대 초반부터 가수로 활동하면서 <새색시 시집가네> <소낙비> <타복네> <목로주점> 등 수 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특히 구전민요나 향토색 짙은 노래에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검은 나비”, “호랑나비등에서 건반주자로 활동했던 김영균과 결혼하여 <그대>라는 듀엣 곡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 개짐 : 재래식 여성 생리대.

* 곽밥 : 도시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