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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편지] 민족과 조국 그리고 역사 '최진홍'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백년편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2019년)을 맞아 쓰는 편지글 형식의 글입니다. 2019년 4월 13일까지 계속 접수를 받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문의 : 02 -733-5027】


201813일 새벽, 총손(塚孫) 진홍은 한없이 사모로운 5대조 면암할아버지께 삼가 글을 올립니다. 저는 지금 막 할아버지 신위를 모시고 할아버지께서 거처하셨던 고향집에서 제사를 올렸습니다. 지금은 바로 할아버지께서 111년 전에 돌아가신 바로 그 시각입니다!

 

동짓달 보름을 하루 넘긴 오늘 밤, 고향집 하늘에 떠 있는 차디찬 달을 보면서 적의 땅 대마도에서 망국의 한을 온 몸으로 품은 채 순국하신 할아버지를 추모하자니 저미는 가슴을 주체하기 어렵습니다.

 

순국!

사라져가는 조국의 운명을 보고 하나 밖에 없는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바치는 지고지순한 행위가 바로 순국이지요!

 

순국의 의미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저는 이제 할아버지의 순국 과정을 찾아가 봅니다. 우리 역사는 1905년 을사늑약으로 국권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이듬해 할아버지께서는 74세의 노구를 이끌고 의병을 모집하셨지요. 대포로 중무장한 일본을 의병으로 상대하는 일이 성공할 수 없음을 잘 알고 계셨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자살을 감행한 목적은 그러지 않고서는 역사가 유지될 수 없다는 절실함에 있었습니다. 당신께서는 일본의 패망을 분명하게 예견하셨더군요. 하지만 일본의 패망이 곧바로 대한의 광복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는 점을 더욱 강하게 인식하셨지요. 일본이 망해도 우리민족이 사라진다면 국권을 회복할 수 없다는 중요한 사실을 인식하셨던 것이지요.

 

후손은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순국은 출발이 바로 우리 민족이었다는 바로 그 사실 말입니다.

 

역인종지계(易人種之計)’!


할아버지는 일제의 간계를 바로 역인종지계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우리민족을 이제 이 세상에서 영원히 없애버리려 한다는 사실을 간파하셨더군요. 중국민족도 아니고 일본민족과도 다른 우리 민족이 이제는 더 이상 이 지구상에서 존재할 수 없게 된다는 엄청난 시대상황을 마주한 할아버지의 심정을 상상하자니 오싹한 전율이 흐르고 맙니다.

 

이 엄중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몸부림이 바로 당신의 순국이었지요.

이제 후손은 민족과 조국을 나누어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사실 우리 역사에서 나라가 망한 경험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지요. 이미 고구려, 백제, 신라가 망했으며, 고려가 또한 망했었지요. 하지만 과거의 망국은 왕조만 망한 것인데 비해 당시 할아버지가 목도하신 것은 민족자체가 없어져버린다는 실로 역사상 초유의 경험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조국보다 앞서 민족이 있다는 사실을 할아버지의 순국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순국은 단순한 군주에 대한 충성이나 왕조의 연장이 아니었습니다. 민족을 보전하기 위해서 당신께서는 먼저 고종임금에게 순국할 것을 요구하시더군요. 이 나라 역사상 신하가 군주에게 죽음을 요구한 적이 있었나요? 왕조 국가에서 40여년 이상을 받들어 온 임금에게 자살할 것을 요구하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하자면 제 가슴은 먹먹해질 따름입니다. 정말로 더 이상 이 글을 써나가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고종은 이를 결행하지 못했지요. 그러자 당신께서 민족과 조국 앞에 목숨을 바치시더군요!  

민주주의만 피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국가의 운명도 피를 먹고 지속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셨지요.

    

 

할아버지의 이 순국으로 민족은 살아났고, 살아난 민족은 마침내 국권을 회복했지요. 광복 이후에 조국에 돌아온 임시정부 요인들은 그 벅찬 감격을 알리는 환국고유제를 할아버지를 모신 사당, 이 곳 모덕사에서 올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울려 퍼졌던 백범 주석의 다음과 같은 뜨거운 정성을 할아버지는 이미 들으셨겠지요!

 

··· 외로운 소자(小子)는 어려서 스승의 가르침에 선생의 말씀을 받잡고 내내 잊지 못하였습니다. 나라 잃고 안팎의 난리 속을 헤매다가 지쳐 쓰러질 때마다 선생의 위대한 훈업에 격려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


그렇다면 과연 그 무엇이 할아버지로 하여금 민족과 조국을 목숨과 바꾸면서 지키게 하였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바로 역사의식 이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평생을 바른 역사를 옳게 지키며 살아내고자 혼신의 힘을 다하셨다는 중요한 사실을 순국의 국면에서 남기신 시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님이 남기신 그 시 가운데 두 수를 오늘 밤 제가 할아버지 영전에 온 정성을 모아 목청껏, 목청껏 낭송하나니 할아버님은 들어 주세요.


  皓首奮畎畝 백발을 휘날리며 밭이랑을 뛰어나옴은

  草野願忠心 초야의 충성심을 바치려 함이로다

  亂賊人皆討 왜적을 치는 일은 사람마다 해야 할 일

  何須問古今 고금이 다를소냐 물어무엇 하리오

 

   起瞻北斗拜瓊樓 이른 아침 북쪽 향해 임금님께 절 올리니

  白首蠻衫憤悌流 흰머리 만삼자락 분한 눈물 흐르누나

  萬死不貪秦富貴 만 번을 죽는다고 어찌 부귀 탐하리요

  一生長讀魯春秋 평생을 온몸으로 역사품고 살아갈 뿐

      

최 진 홍

최익현 선생 5대손

현 순국선열유족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