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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화보] 을사늑약에 비분강개하며 자결로 생을 마감한 '민영환 선생' 동상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오호라

나라와 민족의 치욕이 이 지경에 이르렀구나

생존경쟁이 심한 이 세상에서 우리 민족이 장차 어찌 될 것인가


무릇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반드시 죽고

죽기를 기약하는 사람은 살아 나갈 수 있으니

이는 여러분들이 잘 알것이다. (뒷 줄임)


이는 민영환 유서 '이천만 동포에게 드림' 가운데 일부이다.  민영환은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이강제로 체결되어 국권을 강탈당하자 이를 비분강개하여  11월 30일 45살의 나이로 2천만 동포와 각국 공사에게 보내는 유서 2통을 남기고 품고 있던 단도로 목을 찔러 자결, 순국의 길을 걸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나라이름을 변경하고 황제국을 내세웠으나, 새로 세운 나라의 앞길은 막막하기 그지 없었다. 힘없는 대한제국은 일본 청나라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가 러시아에까지 일본에 항복하고 말았고, 대한제국은 일본의 을사보호 강제조약으로 나라의 외교권마저 박탈당하자, 민영환은 을사조약파기와 그 앞잡이였던 오적처단을 주장하며 간곡한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결국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며 민족과 국가에 자신의 심경을 고백하며 자결로써 나라와 민족에게 최후의 뜻을 전하였던 것이다.


종로 조계사 근처 우정총국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는 민영환(민충정공) 선생 동상 앞에 서니, 113년 전 죽음으로 조선 선비의 양심이 되고자 하였던 선생의 우국충정이 새삼 느껴져온다. 선생을 보듯 동상을 물끄러미 바라다보면서 썩은 무리들이 나라의 주인행세를 못하도록 늘 깨어있는 한 사람의 국민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해본다.  최근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사리사욕을 채우느라 국고를 빼돌리는 현상을 보면서 결국 국민이 깨어있어야 바로 민주국가가 된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알게되면서...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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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