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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면 대구요, 비 내리면 청어란다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93]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저는 고교 은사님이신 권오길 교수님에 대해 여러 번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달팽이 박사,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 정년퇴임, 책을 30권 넘게 쓰신 1세대 생물수필가 등등. 전에 월간중앙에 양승국 변호사가 산에서 만난 사람을 연재했는데, 그 때 권오길 선생님과 봉의산 산행을 하면서 선생님에 대해 취재를 한 적도 있습니다.


지난 1월 권오길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1 , 그리고 고 3 때 권오길 선생님을 담임선생님으로 모셨던 친구들이 같이 매년 1월에 반창회를 하고 있지요. 늘 앞장서서 반창회를 준비하고 친구들을 부르는 이는 친구 최만식입니다. 만식이는 고등학교 때 약간 껄렁거려 권오길 선생님께 맞기도 많이 맞았는데, 그런 친구가 선생님에 대한 사랑과 존경은 제일 큽니다.

 

이 날 선생님께서 최근에 내신 생물 수필집 눈 내리면 대구요, 비 내리면 청어란다를 제자들에게 나눠주셨습니다. 선생님은 매년 반창회 때면 그 동안 새로 내신 책을 춘천에서부터 들고 와 일일이 친필 사인을 하여 제자들에게 나눠주십니다. 이제 선생님께서 출판하신 책은 40권을 돌파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인생 황혼기에 글을 쓰시는 것을 낙으로 삼으십니다. 그래서 전에 재직하시던 강원대 근처에 조그만 아파트를 얻어, 매일 그리로 출근하여 글을 쓰시는 것이지요. 이번에 내신 책 글머리에도 그런 글쓰기의 즐거움에 대해 얘기하셨습니다.


정말이지, 글을 쓰면서 너무도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배워 얻는 앎의 기쁨이 없었다면 어찌 지루하고 힘든 글쓰기를 이렇게 오래 버텨 왔겠으며, 이름 석 자 남기겠다고 억지 춘향으로 썼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저는 선생님의 이 말씀에 200% 공감합니다. 저 또한 글을 쓰면서 배워 얻는 것이 너무 많거든요.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내 머리 속에 있는 것만을 쏟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글을 쓰면서 이것저것 찾아보다 보면 마치 호미로 고구마 밭을 일굴 때 고구마가 줄기 여기저기서 걸려 나오듯이,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중얼거립니다. “! 이런 것도 있었네! 와우! 이런 것도 있었어?!!!”


선생님은 스무 해 넘게 글을 써오던 중 우연히 갈등’, ‘결초보은’. ‘숙맥이다등의 말에 식물이 오롯이 숨어 있고, ‘당랑거철’, ‘형설지공등에 동물이 깃들여 있음을 아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러 격언이나 잠언, 속담, 고사성어에 생물의 특성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알았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내내 우리말에 녹아 있는 선현들의 해학과 재능, 재치에 숨넘어갈 듯 흥분하여 혼절할 뻔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왜 진작 이런 보석을 갈고닦지 않고 묵혔던가 생각하니 후회막급이라면서, 이런 것을 발굴해내어 글을 쓰시는 것을 생애 마지막 일이라 여기고 혼신의 힘을 다 쏟으시기로 다시금 결심하십니다.


숨넘어갈 듯 흥분하여 혼절할 뻔하였다...” 여러분들도 글을 쓰면서 그렇게 흥분하여 혼절할 뻔한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혼절할 정도는 아니지만 흥분하여 짜릿한 오르가즘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은 있습니다. 그런 글쓰기의 즐거움이 있으니까, 저도 바쁜 변호사 생활 속에서도 시간을 쪼개어 글을 쓰는 것이지요.

 

요즈음은 사진 찍는 즐거움까지 더하여 없는 시간을 더 쪼개고 쪼개고 있지만... 이거~ 제가 이 글의 제목을 눈 내리면 대구요, 비 내리면 청어란다로 잡아놓고 아직 책 눈 내리면 대구요, 비 내리면 청어란다의 내용에 대해서는 얘기도 하지 않았군요. 아래에는 책에 나오는 내용 중에서 제 눈길을 끄는 것 몇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책 제목의 눈 내리면 대구요, 비 내리면 청어란다부터 봐야겠군요. 이는 눈 본 대구 비 본 청어란 북한 속담을 제목으로 쓴 것으로, 눈이 내릴 때는 대구가 많이 잡히고, 비가 올 때는 청어가 더 많이 잡힌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습관적으로 대구’, ‘대구하며 대구를 먹었지, 왜 이름이 대구인가를 생각해보지 않았네요. 입이 커서 대구(大口)’입니다. 이 말 들으며 그 동안 먹던 대구를 떠올리면 아하! 그렇구나! 대구가 입이 컸었지!’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대구는 어패류, 갑각류, 갯지렁이류 등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대식가로 상어 새끼도 잡아먹으며, 심지어는 자기 새끼까지도 먹는다고 합니다. 하하! 입이 크니까 가리는 것이 없는 모양이네요.


나무를 쳐다보면서 땅 속의 뿌리는 어느 정도 될까 생각해본 적 있습니까? 보통은 덩치로 볼 때에 땅 위의 몸통, 줄기, 가지가 땅 속 뿌리보다는 적어도 두 배 이상은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땅 위에 우뚝 서 있는 잎줄기와 땅속에 들어 있는 뿌리의 생체량은 거의 맞먹는다고 합니다. 무게가 엇비슷하다는 얘기이지요.

 

그만큼 나무라는 생명을 지탱하는 뿌리가 중요하다는 얘기이겠지요. 이런 땅 속의 뿌리가 땅 속 깊이 들어가면 어디까지 들어갈까요? 선생님은 세계에서 제일 깊게 뿌리를 내린 식물은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바스키아 알비트렁카(Boscia albitrunca)라는 나무로, 그 뿌리가 무려 60m 깊이를 파고든다고 합니다. 60m? ! 사막에 사는 생명의 처절함이요! 그 숭고함이요!


그리고 이것은 아실만한 분은 다 아시는 것일 텐데, 녹두나물을 왜 숙주나물이라고도 하는지 아십니까? 숙주나물의 숙주는 세종 때 집현전 학자 신숙주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신숙주와 성상문은 세종이 가장 아끼는 학자였지 않습니까? 둘은 한글 창제를 위하여 세종의 특명을 받고 명나라의 음운학자 황찬을 만나기 위해 13차례나 요동에 갔다 왔었지요.

 

그런데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면서 둘의 운명은 극명하게 갈립니다. 성삼문은 사육신으로 죽음으로 절개를 지켰는데, 신숙주는 세조에 붙어 부귀영화를 누린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신숙주의 절개가 녹두나물처럼 잘 변한다고 하여 녹두나물을 숙주나물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네요. 선생님은 여기에 더하여 숙주나물로 만두소를 만들 때 짓이겨서 넣으니, 이것은 신숙주를 이 나물 짓이기듯이 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하십니다.


같은 조개류 중에 꼬막이나 피조개의 껍질을 벌리면 다른 조개류와 달리 유별나게 빨간 액체()를 볼 수 있지요? 저는 이 또한 그러려니 하였는데, 이번에 이 책을 보며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보통 조개들은 산소를 운반하기 위해 헤모시아닌을 사용하는데, 갯벌에 묻혀 사는 꼬막이나 피조개는 다른 곳보다 산소가 부족한 곳에서 살기에 헤모시아닌보다 산소 결합력이 우수한 헤모글로빈을 사용한답니다. 그런데 헤모글로빈이 철을 함유하고 있기에 붉은 것이지요. 우리 몸의 피가 붉은 것도 이 헤모글로빈 때문이겠지요?


그럼 독수리는 왜 대머리일까요? 독수리는 먹이인 시체에 대가리를 처박고 먹이를 후벼 파먹기에 먹이의 병균이나 기생충이 머리에 옮겨 붙지 않게끔 털이 빠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대머리 (禿)’자를 써서 독수리라고 하는 것이라고 하구요. 아하! 그렇구나. 대머리라 독수리라고 부른 것이구나. 이런 것은 조금만 관심을 갖고 탐구하면 알 수 있는 것인데, 우린 주위 사물이나 현상을 그저 그런가보다 하며 무심코 지나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권오길 선생님처럼 주위 사물을 하나하나 애정을 갖고 살펴보면 주위에 재미있고 놀랄만한 사실들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캐올리면서 때로는 숨넘어갈 듯 흥분하여 혼절할 뻔 하시기도 한다고 합니다. 선생님! 이제 연세도 있으시니까 너무 흥분하지는 마십시오. 그러다가 정말 혼절하시면 안 되니까요. 부디 앞으로도 백수를 누리시면서 저희들에게 재미있는 생물이야기 많이많이 들려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