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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외로운 산에서 연잎옷을 입고 지내려 하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766]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人間軒冕斷無希(인간헌면단무희) 인간 세상의 높은 벼슬 단연코 바라지 않았고

惟願江湖得早歸(유원강호득조귀) 오직 강호에 일찍 돌아갈 수 있길 원했네

已向孤山營小屋(이향고산영소옥) 이미 외로운 산에 작은 집을 지었으니

何年實着芰荷衣(하년실착기하의) 어느 해에 실로 연잎 옷 입으려나?

 

이는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가 지은 <차운겸보숙장영회이수(次韻謙甫叔丈詠懷二首)>라는 한시입니다. 귀거래(歸去來, 관직을 버리고 귀향함)에 대한 자신의 뜻을 강력하게 드러내고 있는 시입니다. 흔히 세속인들이 바라는 높은 벼슬에는 관심이 없고 현실에서 벗어나 자연에 돌아가 은자적(隱者的) 삶을 희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로운 산에 작은 집도 지었지만 언제 그곳에 가 연잎옷을 입고 소일할 수 있을 지는 잘 모릅니다.

 

마지막 연에 나오는 기하의(芰荷衣)’는 마름과 연꽃으로 지은 옷을 말하는데 자연에 숨어 살던 은자(隱者)들이 즐겨 입었다고 하는 옷입니다. 고산(孤山)’은 숨어 살면서도 장가도 들지 않아 처자식도 없었던 중국 북송(北宋)의 처사 임포(林逋)가 살던 곳을 말하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윤선도의 호여서 윤선도가 숨어살 데를 일컫기도 하지요. 따라서 윤선도가 한때 숨어 살던 양주의 고산(孤山) 또는 보길도의 금쇄동(金鎖洞)을 두고 한 말인지도 모릅니다.




  

실제 이 시는 당시 이이첨(李爾瞻)을 탄핵하는 글을 올려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를 가던 때 지은 것으로 30살 무렵의 작품입니다. 성품이 강직하고 시비를 가림에 타협이 없었던 남인 윤선도는 송시열 등 노론파와 맞서다 수차례 귀양을 갔으며, 나이 81살에 유배에서 풀린 뒤 보길도로 와 정자를 짓고 살았습니다. 85살 부용동(芙蓉洞) 낙서재(樂書齋)에서 세상을 떠난 윤선도는 숙종 1(1675)에 이조판서(吏曺判書)에 추증되었고, 영조 3(1727)에는 특명으로 불천지위(不遷之位, 나라에 큰 공을 남긴 사람에게 사당에 영구히 두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허락된 신위)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