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17 (화)

  • -동두천 18.8℃
  • -강릉 19.2℃
  • 맑음서울 16.9℃
  • 구름조금대전 16.9℃
  • 구름많음대구 16.8℃
  • 구름많음울산 15.9℃
  • 연무광주 17.8℃
  • 구름많음부산 16.8℃
  • -고창 16.5℃
  • 맑음제주 16.4℃
  • -강화 16.0℃
  • -보은 16.8℃
  • -금산 16.5℃
  • -강진군 16.9℃
  • -경주시 18.0℃
  • -거제 17.3℃
기상청 제공

김용옥 시인의 세상 톺아보기

되나 깨나 “아Q” 천지

[김용옥 시인의 세상 톺아보기 44]

[신한국문화신문=김용옥 시인]  알아야 면장을 한다던가. 일단 알아야 화도 내고 거친 말도 하고 개탄도 할 수 있다.

나이 지긋해지면 속세를 등지고 유유자적하며 고상하게 늙어갈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세상은 옛세상과 다르고 요즘사람은 옛사람과 달라 늙어도 늙은이의 지혜가 참 부족하다. 과거의 영광을 권위로 알고 젊은 지성에게 사사건건 섭정을 하느니 조용히 늙어가는 게 낫다.

 

늙은 부자는 많아도, 이웃을 구하기보다 시달려 죽이는 칼 안든 도척이 부지기수다. 양심가인 줄로 믿고 따랐더니 그럴싸한 포장언어와 위장처신으로 아직 호기심 많은 젊은 지성들에게 수치스러운 장사를 하거나 유명세를 쥐고 오도(誤導)하는 정치문화인은 역겹다. 문화권력은 정치권력의 부속물 아닌가. 진짜 지성이라면 그쯤은 간파할 것이다.

 

한때 문화인은, 적어도 멋있는 지성인이라는 뜻이었고 예술문화의 일번지는 문인이었다. 그러나 대중문화가 대세인 이 시대에는 문사적인 문인이나 학력지식의 축적자가 아니라 대중문화의 콘텐츠를 개발한 자가 일류다. 인터넷과 SNS와 스마트폰 발달은 사고방식과 능력을 바꿔놓았다.

 

문학에 서정주도 가고 문순태도 지나갔다. 아무개를 들이대도 문단인 중에서도 끼리끼리 인정하는 꼴이다. 인터넷과 누리집에 오르락내리락하는 짧은글이 차라리 상큼하고 깔끔하고 후련하다. 시인이 본뜨고, 명색 수필가가 표절하고 있는 지경이다. 철저히 시를 공부한 시인보다 길가의 붕어빵처럼 시인과 수필가가 된 문인이 부지기수다.

 

클래식 음악세계에도 특별한 심볼이 이미 없어졌다. 옛것을 우려먹어도 장삿술일 뿐이다. 정경화(바이올린), 정명훈(피아노, 지휘)의 시대도 가고 조수미(성악가), 백건우(피아니스트), 김형욱(바이얼린) 시대도 멀어져갔다. 서태지가 가요의 혁명을 일으키고 박진영과 싸이, 비보이가 미디어협상력을 갖고 대중문화의 권좌에 앉았다. 요즘엔 방탄시대의 시대다. 그런 시대다.


 

이럴 동안에 문학에선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한국문학계에서 비평의 왕좌를 오랫동안 차지하던 김윤식은 일본의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을 표절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을 것인가? 속이 뒤집힌 흙탕물도 아래쪽으로 흐르다 보면 자정되지 않던가. 구미(歐美)에까지 나가 한국문인을 망신시킨 신경숙도 일본소설 토막을 표절하고, 전북일보에 연재하던 조수비의 소설도 일본소설의 표절이 불거졌었으니 이 무슨 글도적질인가. 윤리도덕의식도 죄의식도 없었으니 후회해도 너무 늦었다.

 

이들이 잘 나가는 동안에 어쩌자고 박범신은 이따금 얻어맞았다. 또 슬프고 한탄스럽게도 국가의 지성과 예술의 수준이 미천한 고로, 마광수는 대학교강의실에서, 강의 중에, 저질권력에게 체포되었다. 그의 글은 애독할 만하고 특히 그의 수필과 연구논저는 명작 아닌가. 게다가 지성의 무대 대학교의 교수였건만 한마디로, 그가 비참히 여길 만큼, 그는 속절없이 병들어야 했다.

 

진정한 지성인을 자살하게 만든 이 나라의 환경이다. 아무도 손 내밀어준 문사가 없었다는 게 못내 가슴 아프다. 산다는 건 각자의 몫이라 해도 뼈저리게 외롭다. 슬프기 한없다. 정신질환임에도 여전히 존중 보호 받으며 미술혼에 전념하게 하는 일본인 미술가 쿠사마 야요이가 부럽고, 그를 건사하는 일본의 예술정신이 부럽다.


21세기는 이미 수위를 넘게 지식과 지식인이 차고 넘쳐버렸다. 대한민국은 교육열로 성장한 국가여서인지, 나라 안은 지식인의 홍수시대나 만찬가지다. 그러나 지식인 대부분은 재벌공화국 삼성공화국의 돈으로 대학, 각종 연구소, 언론기관, 삼법기관(입법, 사법, 행정)에 연줄을 걸고 있으니, 공화국 안쪽이나 바깥쪽이나 모두 조용히 입다뭄을 하느라 말하는 벙어리거나 중얼중얼 제대로 들리지 않는 소리로 웅얼거리는 반벙어리로 산다. 권력 재력에 빌붙지 못하면 눈 뜬 장님이나 말하는 벙어리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현대는 대중지성(mass intelligence) 또는 집단지성의 시대로 지식의 소비자인 동시에 지식의 생산자가 되어야 한다. 혼자서는 하지 못하는 일을 대중이 힘을 합하여 가능케 한다. 47,000원짜리 노랑봉투가 삼성손배소송으로 47억 원을 물어야 하는 노동자들을 일으킨 일도, 물결처럼 이어지는 촛불집회로 철골(鐵骨) 같고 콘크리트 같은 대통령 박근혜를 탄핵시킨 일도 힘없는 대중의 힘이 모여, 모여, 모여서 이뤄냈다.

 

정치학 법학을 제대로 공부한, 부정부패한 지식인의 지식의 무덤 위에 꾸며진 초록 풀밭 같은 것이 집단지성이다. 권력재력가가 비밀의 벽 속에 갇혀 놀 때, 대중지성은 풀밭 위에서 더불어 노래하고 쉴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힘을 무리지성(swarm intelligence)이라고 한다. 하나하나의 힘은 미미하지만 무리의 지능은 대단한 에너지와 지식의 극대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젠 케케묵은 나이의 늙은 누구에게 뭘 가르치거나 알려주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 사실 나이만 늘어나고 뭘 모르는 근엄하고 교만한 어른들이 뭘 배울 수나 있기는 한가?

 

더 이상 지식을 기억할 머리도, 생각할 생각도 없는, 대중지성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미래지향적인 아젠다(agenda=의제)를 제시할 수도 없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공적(公的)이어야 하며 정신적으로 비굴하거나 불의하고 어리석어선 안 된다는 걸 모른다. 구체적인 현실타개보다는 케케묵은 고정관념에 집착하는 사람들이다. 바로 중국 루쉰(魯迅)이 쓴 소설의 주인공 'Q'들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먹을 수도 없고 불을 지필 수도 없는 잡초가 판친다. 아하, Q 천지다

                   

* 《아큐정전(Q正傳, The True Story of Ah Q)》 : 1921년에 루쉰이 발표한 대표적인 중편 소설로, 베이징 신문 신보부간(晨報副刊)에 연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