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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은 네가 나라니, 선도 악도 아니라니

[서평] 《그 잠깐 소낙비에》, 박영희 시조집, 동학사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제가 작년 10월에 서울법대 문우회 회원이 되면서 여러 문우회 회원들의 시집과 책을 소개했었지요? 이번에도 한 권 소개합니다. 박영희 선배가 펴낸 시집 <그 잠깐 소낙비에>입니다. 지난 연초 모임에 참석하였을 때 이 시집을 받았습니다. 박선배로부터 직접 받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박선배는 그 날 참석하지 못 하시고 시집만 보내셨네요.

 

박영희 선배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여자 선배입니다. 저보다 16년이나 위인 대선배이시지요. 그 시절에 여자가 서울법대 들어간다는 것은 드문 일이었는데, 경남여고를 졸업한 박선배는 아마 경남여고에서도 수재로서 이름을 날리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박선배의 시집은 문우회 다른 회원들의 시집과는 다른 독특함이 있습니다. 시집 가운데서도 시조집이라는 것이지요. 아마 박선배는 처음 시를 쓰시다가, 정형적인 시조의 운율에 맛을 느끼면서 시조로 정착하신 것 아닐까요? 아래에 박선배의 시조 몇 수를 소개합니다.

 

속삭임

 

산 그늘 묻은 여울에

잔설이 아직인데

 

꿈조차 없는 밤을

모로 누워 뒤척인다

 

이른 봄 매화 멍울에

가만가만

듣는 비

 

꿈조차 없는 밤이라고 하였는데, 몹시 피곤하여 꿈조차 꾸지 않았다는 것인가? 그 다음 구절에 모로 누워 뒤척인다는 것을 보면 차라리 그 반대로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고 있는 모습? 이 시조에서 뒤척이고 있는 이는 지금 어디에서 밤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요? 도시의 콘크리트 방은 아닐 것 같습니다. 박선배가 독실한 불교신자이니, 어느 산사에서 이른 봄의 밤을 뒤척이며 봄이 오는 속삭임을 듣고 있는 것일까?

 

어느새 개나리, 목련이 활짝 피고 벚꽃도 여기저기서 그 분홍의 아름다움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그럼 이렇게 이른 봄에 뒤척이던 박선배는 오고야 만 봄을 어떻게 노래했을까요? ‘봄 편지라는 시조를 보지요.

 

벚꽃이 만발하면

그 그늘서 보자던

 

약속은 간데없고

시드는 꽃바람 길

 

저만치

홀로 가는 봄

온 적 없다 전하란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하였던가요? 저는 봄꽃을 보면 오랜 겨울을 보내고 생명이 움트는 그 경이로움에 가슴이 환해지지만, 그러나 가슴 한편은 아릿해지곤 합니다. 이 아름다운 봄꽃도 얼마 못 가리라는 슬픔 때문이지요. 그런데 박선배도 봄꽃에서 저와 비슷한 감정를 가졌던 것 같습니다. 벚꽃 만발하면 그 그늘서 보자고 하였는데, 그 약속 지키려고 하니 벌써 시들어버리는 봄꽃. 그래서 박선배는 그런 봄꽃의 야속함에 온 적 없다 전하란다고 하신 것 같습니다. 박선배는 봄에 그런 아픔을 느꼈다면 가을에는 행복 하나를 느낍니다.

 

행복 하나

 

괸 머리 무거운 날엔

국화차 달여 낸다

 

내리는 찻물 소리

계곡물 흐르는 소리

 

창밖에

감나무 가지가

들어 올린 가을빛

 

가만히 무릎 꿇고 조심스레 찻잔에 방울 방울 떨어지는 찻물 소리를 들을 때 밖에서는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문득 창밖으로 눈을 드니 들어 올려진 감나무 가지 너머로 파아란 가을 하늘이 푸르다 못해 쪽빛으로 물들어, 나의 눈동자마저 물 들일 듯 합니다. 이런 게 행복이 아닐까요? 봄꽃의 슬픔을 노래하고 국화차의 가을 행복을 노래한 박선배는 여름은 또 어떻게 노래했을까요?

 

그 여름 방학

 

그 여름 그 개울에

자갈 맑던 물소리

 

비 오자 급류되어

빼앗아 간 고무신짝

 

칠십천(七十川) 구비 돌아서

모래무지 알집되고

 

여름 개울물이 자갈 많은 곳을 지나면서 내는 그 물소리를 듣다보면 어느덧 내 마음도 차분해지며 머리는 맑아집니다. 그래서 보통 명상음악에는 그런 물소리가 나오게 마련이지요. 그런데 비 오자 급류가 되면 내 마음마저 급해집니다. 거기에다가 고무신짝 하나마저 급류에 떠내려가면 차분하던 마음은 쿵쾅거리며 머리는 어지러이 급류 따라 흩어집니다.

 

그러나 그 고무신짝이 급류를 따라 칠십천 구비 구비 돌다가 다시금 양순해진 물 흐름에서 내려앉아 모래무지 알집이 된다면 굳어졌던 내 입술이 풀어지면서 슬며시 입꼬리는 올라가지 않겠습니까?

 

이번엔 여름에서 정 반대로 겨울로 건너 뛰어 볼까요. ‘눈 내린 새벽이란 시조입니다.

 

창밖엔

밤을 두고

몰래 핀 꽃 눈부셔라

 

엄마가 갖다 놓은

머리맡 선물 같아

 

그리움 환한 눈물에

뛰쳐나간 새벽길

 

밤새 내가 자고 있는 사이 창밖엔 소리 없이 눈이 내렸습니다. 눈은 소리 없이 내렸지만, 뭐랄까 무슨 느낌에 나도 모르게 눈이 떠집니다. 어느 날 여명과는 또 다른 느낌, 순간 내 눈은 창밖을 향합니다. “! 눈이다!” 그리곤 조건반사적으로 뛰쳐나가는 내 발길. 나는 그저 기쁨에 환한 웃음 지으며 뛰어 나갈 텐데, 여인은 그리움 환한 눈물지으며 뛰쳐나갑니다. 머릿속에 여인이 뛰쳐나가는 모습이 선명한 사진으로 그려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박선배는 밤새 내린 눈을 엄마가 갖다 놓은 머리맡 선물에 비유했습니다. 왜 엄마는 머리맡에 몰래 선물만 놓고 갔을까? 혹시 모녀는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서로 떨어져 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그리움 환한 눈물에 뛰쳐나간 여인의 얼굴에선 기쁨과 함께 그리움, 슬픔이 겹쳐 떠오릅니다. 다음 시조는 묵화(墨畫)’라는 시조입니다.

 

잠긴 노을 서러운 날

먹물 찍어 붓을 든다

 

은혜로운 이 하루가

너로 하여 소슬할까

 

단숨에

능선 한 획이

하늘을 받쳐 선다

 

이 시를 읽다보니 서예가 중리 하상호 선생이 떠오릅니다. 중리 선생도 요즈음 묵화의 세계에 흥미를 느끼고 있으시거든요. 전에 중리 선생이 묵화를 그리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한참 화선지를 응시하던 중리 선생이 단숨에 화선지에 선 하나를 휘~익 긋는 것이 박선배의 묵화시조와 딱 어울리는 것 같네요. 아마 박선배도 요즘 묵화의 세계에 빠져든 것은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선()이란 시를 보겠습니다.

 

착하라는 말을 따라

양보하고 포기하고

 

나보다 네가 좋기

바라바라 살았는데

 

실상은 네가 나라니,

선도 악도 아니라니

 

보통 저에게 불교를 믿는 여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부처님 앞에 공손히 절하면서 간절히 현세의 복을 구하는 여인입니다. 그런데 이 이란 시에서는 어떤 깨달음에 이른 한 선승(禪僧)이 떠오릅니다. 박선배도 이젠 이런 선승의 경지에까지 이른 것일까요? 그런데 이 시는 영문으로도 실려 있습니다.

 

Following the words be good,

I yielded and gave up

 

Lived hoping, hoping

That ypu’d fare better than I

 

When after all you are me,

Neither good nor bad can it be

 

박선배도 영문으로도 시를 쓰신 것인가? 영문 번역시는 박선배의 손녀 안기원씨가 번역한 것입니다.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하고 현재 하버드 로스쿨에 다니고 있는 손녀 안기원씨는 할머니의 시 일부를 영문으로 번역하였습니다. 할머니의 시와 손녀의 번역시가 함께 실린 시집이 이 시조집 말고 또 있을까요? 할머니와 손녀가 시 한 수를 놓고 어떻게 번역할까 머리를 맞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노라니, 저도 모르게 미소가 떠오릅니다.

 

박선배님! 귀한 시조집을 선물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저 즉흥적으로 떠오른 생각대로 박선배님의 시조를 제 마음대로 재단한 것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직접 뵈면 송구스럽다는 말씀드리고, 그리고 선배님의 시조의 세계에 대한 귀한 말씀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