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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고려 왕실의 자취 -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 초상

[수장고 속 왕실유물 이야기, 4월의 왕실유물]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올해는 고려 건국 1100 되는 해입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황실 문화재를 중심으로 꾸려진 박물관이기 때문에 고려와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고려 왕실의 자취를 엿볼 수 있는 유물이 있어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조선시대 임금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있는 종묘에는 고려의 공민왕(恭愍王, 재위 1351-1374)을 위해 만들어진 건물이 있습니다. 손쉽게 공민왕 신당(神堂)”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이 건물의 정식 명칭은 고려 공민왕 영정(影幀) 봉안지당(奉安之堂)”입니다. 공민왕의 초상화를 모셔둔 사당이라는 뜻입니다. 소개해 드릴 유물은 바로 이곳에 모셔져 있던 공민왕의 초상화입니다.


 


이 초상화의 보다 정확한 이름은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 초상>입니다. 그림 속에는 남녀 두 명의 인물이 나란히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이 그림이 공민왕 신당에 모셔진 그림이었기 때문에 이것이 공민왕과 그의 부인인 노국대장공주를 그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현재 공민왕이나 노국대장공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에 두 인물의 실제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종묘의 공민왕 신당에 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조선 건국과 함께 태조가 종묘를 건립하면서 함께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종묘는 임진왜란 때 모두 불에 타 광해군 때에 다시 지었습니다. 공민왕 신당 역시 다른 전각들과 함께 재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공민왕 신당에 모셔졌던 이 그림 역시 조선 초의 것이라기보다는 임진왜란 이후인 조선 후기에 다시 그려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정확히 언제 그려진 것인지,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의 실제 모습을 그린 것인지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림 속 인물들을 보면 조선시대의 왕을 그린 초상화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어서 고려시대의 화풍과 복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선, 조선시대에는 임금과 왕비를 함께 그린 초상화를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공민왕으로 짐작되는 남성의 모습을 보면 붉은 색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윗면이 평평한 형태의 관을 썼으며 손에는 홀(, 괌복을 입었을 때 손에 쥐는 도구)을 들고 있습니다. 이 관은 복두(幞頭)라고 하는 것으로 고려시대에는 왕이 복두를 쓰기도 하였지만, 조선의 왕들은 쓰지 않았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복두를 쓰고 어사화를 꽂는 풍습이 있었을 뿐입니다.

 

노국대장공주로 보이는 여성의 복식 역시 우리가 박물관에서 보는 조선 왕실 여성의 복식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입니다. 머리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관을 쓰고 있습니다. 정확히 어떤 종류의 머리 장식인지는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 그림을 통해 고려시대에 왕비가 착용했던 복식의 모습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두 주인공의 앞쪽으로는 접시에 받쳐진 새, 하얀 잔과 음식이 담긴 접시 등이 놓여 있습니다. 바깥쪽 양 옆으로는 풍성한 꽃도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이 공민왕을 기리기 위한 사당이 모셔진 것이기 때문에 아마도 제향의 의미로 음식과 장식들이 함께 그려졌을 것입니다.


 

종묘의 공민왕 신당에는 이 초상화와 함께 공민왕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말 그림[駿馬圖] 세 점이 함께 걸려 있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정황으로 볼 때 이 말 그림들 역시 공민왕이 직접 그린 고려시대의 그림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공민왕이 뛰어난 그림 실력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공민왕이 그림 그림을 나중에 다시 옮겨 그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재근 (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