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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오늘은 애국지사 이상화 시인이 숨을 거둔 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803]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이상화(李相和, 1901 ~ 1943)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 일부입니다. 이상화는 민족의 비애와 일제에 항거하는 저항의식을 바탕으로 겨레의 정서를 잘 다듬어 그야말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민족주의적인 시를 썼는데 1943년 오늘(425)은 그가 숨을 거둔 날이지요. 특히 그는 1926년 잡지 개벽6월호에 저항시로 유명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하여 민족적 비애를 노래했습니다. 그의 시는 당시 1920년대로서는 거의 유일한 민족적 저항시이고 애국시였다고 평가됐으며, 잡지 개벽은 이 시를 실었다가 일제의 탄압으로 폐간하기에 이릅니다.


 

이 시에서 빼앗긴 들이란 일제 강점 하의 비극적인 시대 상황을 표현한 것이고, 당시 상황에 대한 망국의 한과 절규가 담겨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민족적 비애를 노래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끈질긴 민족정신까지 드러낸 시인이었지요. 이상화는 1920년 대에 말세의 희탄(欷嘆)’(1922), ‘단조(單調)’(1922)를 비롯하여 가을의 풍경’(1922), ‘이중(二重)의 사망’(1923), ‘나의 침실로’(1923) 등의 시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시인은 저항시만 쓴 것이 아니라 의열단에 연루되어 구금되기까지 했지요. 항일독립운동에 전 재산을 바친 이동진 선생을 할아버지로 둔 이상화 시인은 고뇌하고 행동했던 애국지사였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