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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화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

“엄마”와 “어머니” / 김영자

석화 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 28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엄마”라는 말과 “어머니”라는 말은 같은 말이면서 다른 말이다. 우리집에서도 그렇고 어릴때 우리가 살던 시골 고향마을에서도 그렇고 “엄마”라는 말과 “어머니”라는 말은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말이였다. 우리가 이런 느낌을 받게 된것은 순전히 우리 어머니에서 비롯된 것이다.

 

며칠전, 시조카의 결혼잔치에 갔다가 딸애가 수탉모양의 옛날식 색과자를 얻어왔다. 하지만 돌처럼 땅땅한 색과자를 그대로 먹을수 없어서 봉투채로 나한테 맡겼다. 그래서 어릴때 우리 어머니가 하시던대로 시루를 놓고 쪘는데 솥에서 피여오르는 향긋한 과자향기에서 나는 어른거리는 어머니 모습을 떠올렸다.

 

우리 어머니는 보통 키에 항상 깡굴깡굴* 짧은 파마머리를 하셨는데 갸름한 얼굴에 눈매며 콧마루며 입매가 부드러웠다. 아무리 힘든 농사일을 하셔도 밖에서 집으로 들어오실 때에는 늘쌍 방그레 웃으셨다.

 

어머니는 우리 오남매들이 실수하거나 잘못해도 언성을 높여 꾸짖거나 탓하지 않고 몇 마디로 너그럽게 넘어가주셨다. 그러나 우리들의 불손한 언행에 대해서는 항상 조곤조곤 타일러주셨다. “세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 나가서도 샌다”, “부모자식 간에도 일이 사랑이다” 이러루한 말씀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다.

 

해방 후 야학교에서 뜯개글*이나 겨우 배운 어머니는 배우지 못한 게 평생 한이어서 우리들이 소설책이라도 책만 들고 있으면 자신이 아무리 바빠도 일을 시키지 않으셨다. 소학교 숙제검사도 못하시는 어머니지만 일밭에서 돌아온 어머니의 첫마디는 한결같이 "숙제를 다 했니"였다. "딸은 시집보내면 그뿐인데 뽕 빠지게 공부시켜 뭐하냐?"는 동네 사람들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녀자일수록 공부해서 당당하게 살아야 된다."며 자신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도 딸 셋을 고루 현성고중에 보내고 중등전문학교에 대학교에 보낸 어머니이시다.

 

어릴 적 우리집에서 아버지만 도시호구*이고 다섯 형제는 당시 호구정책에 의해 엄마 따라 농촌호구였다. 농촌호구라 하얀 입쌀*이 있겠다 달마다 월급이 나오겠다 모두들 부러워하는 부부조합*이었지만 잔밥*이 많아 아버지의 월급은 다달이 알뜰히 모았다가 년말결산 때 생산대에 량식대로 들여놓아야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책을 좋아해서 어머니가 소금 살 돈이 없다고 해도 못들은 척 하고 책을 사들이는데다 늘 약탕관을 안고 살아서 항상 돈이 달렸었다.

 

과일이라고는 제 고장에 흔한 사과배가 고작이었고 사탕과자는 뉘 집 잔칫날이나 청명, 추석에나 겨우 맛볼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깨진 유리조각도 줍고 다 쓴 치약깍지*나 아버지가 보시고난 신문잡지를 알뜰히 모았다가 페품수매소에 바치고 용돈을 마련했다. 그때 1전이면 개눈깔사탕* 세 개 혹은 베개사탕* 두개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곶감만큼 크고 빨갛고 파랗고 노란 채색 띠를 두른 15전짜리 따발사탕*은 살 엄두도 못 냈다.

 

내가 일여덟 살* 때 세벌김도 다 매고 담배조리*도 끝난 늦여름, 앞집 할머니께서 환갑을 쇠게 되였는데 농한기라 엄마가 여러 날 일손을 도와주었다. 감주를 빚고, 흠집 없는 콩알을 골라 콩길금*을 놓고, 엿을 달이고 쌀떡을 빚어 쌀강정을 만들고, 입쌀가루를 쉬워서* 증편*을 빚고...

 

환갑잔치가 끝난 후 앞집각시가 사탕과자를 얼마간 가져왔다. 사탕과자란 소리에 우리들의 입안에선 대뜸 군침이 돌고 목젖이 꼴깍거렸다. 우리들의 눈은 사탕과자를 싼 싯누런 마분지봉지에 딱! 꽂혀서 떨어질 줄 몰랐다. 앞집각시와 어머니가 인사말 몇 마디 나누는 시간이 얼마나 지루하게 느껴지던지. 앞집 각시가 떠나기 바쁘게 우리형제들이 욱ㅡ 하고 달려드는데 어머니께서 웃으시며 봉지를 슬쩍 자신의 앞으로 당겨놓으셨다. 그리고는 여전히 웃음 띤 얼굴로 눈이 휘둥그레진 우리들을 하나하나 눈주어* 바라보시며 조용히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어머니라 부르면 이것을 줄게."

 

그때나 지금이나 대부분 가정에서 애들이 엄마라 부른다. 헌데 우리 어머니는 엄마라는 부름보다 어머니라는 부름이 더 고상해 보이고 예절스러워 보였는지 자신에 대한 호칭을 어머니로 바꾸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우리 형제로 말하면 엄마나 어머니나 다 마찬가지요 한 가지 뜻이요, 부름의 대상에도 변함이 없었건만 불시에 호칭을 바꾸려니 어색하고 쑥스러워 인차*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흘끔거리며 서로 눈치를 보았다. 그래도 엄마는 양보할 기미가 없으셨다. 그리고는 고무격려라도 하시듯 우리형제들을 둘러보시며 한결같이 웃고만 계셨다.

 

숫기 없는 우리들이 계속 쭈밋거리자 어머니는 누런 마분지봉지를 헤치고 손바닥으로 사탕과자를 쓱 펼쳐보였다. 순간 우리들의 눈앞에는 채색의 동화세계가 펼쳐졌다. 어머니의 손바닥에는 활짝 날개를 편 꽃나비색 과자와 그림책에서나 보던 커다란 물고기색과자 그리고 필기장만큼이나 큰 쌀강정이 곱게 드러누운 가운데 두개의 따발사탕이 찬란하게 빛났다.

 

 

순간 어린 두 동생은 약속이나 한 듯 이구동성으로 "어머니!" 하고 외쳤다. 먼저 "어머니"를 불러서 사탕과자를 상장 받듯이 분여받고* 자랑스레 냠냠거리는 동생들을 보고 나와 두 언니도 뒤질세라 "어머니"를 불렀다.

 

첫 번 부름이 힘들지 하루에도 여남은 번씩 부르는 어머니인지라 이틀도 안지나 "어머니"는 엿가락처럼 우리들의 입에 찰싹 달라붙었고 우리 형제들은 온 동네에서 유일하게 "어머니"를 부르는 아이들로 되였다.

 

"저 집에서는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했길래..."

 

이렇게 말씀하시는 동네 어르신들의 칭찬을 들을 때면 어머니는 무척 흐뭇해 하셨고 "엄마"를 부르는 동네 애들 앞에서 “어머니”를 부르며 우리 형제자매들도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었다. 이런 부모님 밑에서 엄한 례절교육을 받으며 자란 우리들은 그것이 완전히 몸에 배여 버렸다. 이렇게 몸에 밴 례절은 그 후 대학교에 가서도 밤낮 코를 맞대고 사는 한 침실 친구들의 우스개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지만 마음만은 마냥 즐거웠다.

 

<연변말 풀이>

* 인차 : 이내

* 깡굴깡굴 : 퍼머머리결이 뽀글뽀글한 모양

* 뜯개글 : 가갸를 갓배워 겨우 뜯어 읽는 글

* 도시호구 : 중국은 도시주민 호적과 농촌주민 호적으로 나뉩니다. 호구(户口)=호적(户籍)

* 입쌀 : 멥쌀을 보리쌀 따위의 잡곡이나 찹쌀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 부부조합 : 부부가 어울려 손발이 잘 맞는 것

* 잔밥 : 어린애를 가리킴. -예, 저 집에 잔밥이 많다.

*치약깍지 : 다 쓴 치약의 껍데기(깍지=껍대기)

*개눈깔사탕 : 동그란 모양의 사탕

* 베개사탕 : 네모난 사탕

*따발사탕 : 따발 곧 똬리모양으로 꼬아만든 사탕

* 일여덟 살 : 7~8살

* 담배조리 : 농가에서 입담배를 건조하기 위해 묶는 작업

* 콩길금 : 콩나물

* 쉬워서 : 발효시켜 신맛이 나게 해서

* 증편 : 쌀가루에 술을 넣고 반죽하여 발효시켜 찐 떡

* 눈주어 : 눈길을 보내어

* 분여받다 : 몫을 나누어 받다. (분여-分与=배분, 분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