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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조선에 처음 들어온 전화기 “덕률풍(德律風)”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821]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전화> - 극장에 온 손님의게 전화가 올 때, 그것을 전달하는 사람이 소래를 버럭 질러서 그 사람의 일홈을 부를 때 당자는 (더구나 여자) 퍽 불쾌할 것이다. 여긔에는 완전치는 못하나마 조선 극장에서 하는 방식이 조흘 것이다 스쿠린 엽 기둥을 뜰코서 유리등을 끼여놋코 그 유리에 불을 사람의 일홈을 써 놋코 전등으로 신호하는 방식이다.”

 

일제강점기 잡지 《별건곤》 제5호(1927년 03월 01일)에 나오는 “극장만담(劇場漫談)”이란 제목의 글입니다. 1920년대에는 일반인이 전화기를 쓸 수가 없어서 관영전화를 써야 했는데 극장에 설치해놓고 관객에게 전화가 오면 바꿔주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영화 상영 중이니 관객의 이름을 크게 불렀을 것이고, 그 탓에 이름을 불린 사람은 불쾌했겠지요. 그런데 조선극장에서는 그렇게 큰 소리로 관객을 부르지 않고 영상막(스크린) 옆의 기둥 유리에 불을 넣고 이름을 볼 수 있게 했던 모양입니다.

 

 

조선에 처음 들어온 전화기는 1882년 청나라에 전기 기술을 배우러 갔던 유학생 ‘상운’이 가져 온 것이라 하지요. 이로부터 14년이 흐른 뒤인 1896년에야 덕수궁 안에 전화기가 설치됐습니다. 처음 들어왔을 때는 전화기의 영어 말인 ‘텔레폰’을 한자식으로 바꾼 “덕률풍(德律風)”, “덕진풍((德眞風)”, “다리풍(爹釐風)” 등과 어화통(語話筒), 전어통(전어통) 등으로도 불렀다고 하지요. 그 뒤 《고종실록(33권, 고종 32년)》에 보면 1895년 통신국의 사무를 전하면서 일본서 만든 말인 “전화(電話)”를 썼고, 이후 이 말로 굳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