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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복식연구에 귀중한 자료 '영조대왕의 도포'

국가민속문화재 제220호

[우리문화신문=최미현 기자] 영조대왕의 도포는 1979년 파계사 원통전(圓通殿)의 관세음보살상을 금칠하다가 발견되었다. 도포와 함께 발견된 한자 두루마리에 적힌 발원문에 의하면, 영조 16년(건륭 5,1740) 9월 파계사 대법당을 수리하고 영조가 탱화 일천불을 희사하면서 이곳을 왕실을 위해 기도하는 도량으로 삼고 영조의 청사상의(靑紗上衣)를 복장(腹藏, 불상을 만들 때, 그 가슴에 금ㆍ은ㆍ칠보와 같은 보화나 서책 따위를 넣음 )하여 만세유전을 빈다고 기록하고 있다.

 

 

도포는 조선시대에 왕을 비롯하여 사대부의 외출복으로 입혀졌던 옷으로 기록이나 유물은 16세기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형태는 곧은 깃에 넓은 소매가 달린 것으로 뒷자락이 2중구조로 된 특징이 있다. 길에서 내려오는 기존의 뒷자락이 있으며 앞의 무가 뒷자락 안에 붙어 있어 뒷자락이 2단으로 분리되어 있다. 18세기 풍속화 중 도포를 착용한 모습에서 서로 분리되어 있는 뒷자락 모습을 볼 수 있다.

영조의 도포는 무늬 없는 사(紗:[은조사])로 된 홑옷으로 현재의 색상은 연한 녹색빛을 보인다. 소매는 넓은 두리 소매이며 깃의 모양은 목판깃과 당코깃 모양이 합쳐진 반당코깃(반목판깃)이다. 일반인의 도포가 곧은깃(직령깃)인데 반하여 반목판깃의 형태여서 서민과 왕족이 사용한 도포의 양식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영조대왕의 도포는 전세 유물 도포 중 가장 오래된 것이면서 왕이 착용하였다는 점이 기록되어 있는 중요한 자료로 형태와 색이 비교적 완전하여 복식사적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자료: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