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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편지

1920년 오늘, 봉오동전투서 독립군 대승 거둔 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834]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920년 6월 7일은 우리 독립군 부대들이 일본군을 봉오동 골짜기로 유인하여 크게 무찌른 날입니다. 3.1만세운동 이후 무장 독립전쟁을 벌이는 것이 독립의 지름길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지고 있었는데 만주 일대에서는 서로군정서, 북로군정서, 대한독립군, 광복군 총영 등 50여 개의 크고 작은 독립군 부대들이 조직되어 국내 진공작전을 벌였습니다. 특히 1920년 6월 4일 독립군 홍범도ㆍ최진동 부대의 1개 소대가 두만강을 건너 함경북도 종성군 강양동에 주둔하고 있던 1개 소대 규모의 일본군 헌병 국경초소를 습격하여 격파하였지요.

 

이에 일본군 남양수비대는 1개 중대를 출동시켜 반격전을 전개하였는데 독립군사령부는 1개 소대를 삼둔자 서남쪽 봉화리에 매복시킨 다음 일본군을 매복한 곳으로 유인하였습니다. 6월 6일 아침 10시 독립군은 100m 고지에서 일제히 사격을 퍼부어 일본군 60명을 사살하였지요. 이렇게 되자, 일본군은 보병 및 기관총대 1개 대대를 출동시켰습니다.

 

 

그러자 연대장 홍범도는 직접 2개 중대를 이끌고 서남산 중턱에 자리 잡아 일본군의 선봉이 봉오동 어구를 통과하도록 유도한 다음 일본군 주력 부대가 독립군이 잠복한 포위망에 들어서자 일제히 사격을 퍼부었지요.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157명의 전사자와 200여 명의 부상자를 내고 온성 유원진으로 달아났습니다. 이에 반하여 독립군은 장교 1명, 병졸 3명이 전사하고 약간의 부상자를 냈을 따름입니다. 봉오동전투는 홍범도ㆍ최진동 부대가 일본군 정규군을 크게 무찔러 독립군의 사기를 크게 진작시킨 전투로 청산리대첩과 함께 항일 무장독립운동사에 빛나는 전과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