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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콘크리트 덧바른 미륵사터 석탑, 본 모습 되찾다

20년 만에 수리 완료, 일제가 덧바른 185톤 콘크리트 걷어내
오는 12월까지 주변 정비 후 완전한 모습 공개할 것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보 제11호 전북 익산 미륵사터 석탑은 백제 무왕 40년인 639년 세운 것으로 1,300년이나 되었다. 또 석탑은 2,800개가 넘는 석재를 목탑처럼 짜 맞춘 것으로 남아 있는 6층까지의 높이가 아파트 5층에 가까운 14.5m나 되어서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석탑이다.

 

그러나 이 석탑은 조선 시대 이후 반파된 상태로 6층 일부까지만 남아있었는데 1915년 일본인들이 붕괴된 부분에 콘크리트를 덧씌워 왜곡되었다. 이 미륵사터 석탑은 1998년 전라북도에서 구조안전진단을 한 결과 콘크리트가 노후화되고, 구조적으로 불안정하다는 판단에 따라 1999년 문화재위원회에서 해체ㆍ수리하기로 결정된 바 있다.

 

 

 

이후 2001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전라북도와 협약을 맺고 석탑의 본격적인 해체조사와 함께 다양한 분야의 학술ㆍ기술 조사연구, 구조보강, 보존처리 등을 시행하였다. 이제 20년 동안의 긴긴 작업 끝에 최근 수리를 마친 미륵사지 석탑의 모습과 조사연구 성과를 공개했다.

 

한편, 2009년 1월 석탑 해체조사 과정 중 1층 내부의 첫 번째 심주석(석탑 안 가운데에 있는 돌기둥)에서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가 발견되어 학계, 불교계 등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바 있다. 이를 통해 석탑의 건립 시기(639년), 미륵사 창건의 배경과 발원자 등이 밝혀졌으며, 이후 거둔 유물들이 학술조사와 보존처리 과정을 거쳐 최근 보물로 지정예고된 것도 의미 있는 성과 중 하나이다.

 

다만, 이 석탑은 9층이 아닌 ‘6층 일부 복원’을 했다. 미륵사터 석탑이 6층 일부까지만 남아 있고, 원래 몇 층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없다. 따라서 9층 복원이냐, 현재 남아 잇는 상태인 6층 일보 복원이냐를 놓고 논쟁이 계속돼 왔었다. 그러나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기록이 없는 추정 복원은 역사성을 왜곡할 수 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복원도 이에 따른 것이었다.

 

 

이후 12월까지 석탑 외부에 설치된 가설시설물의 철거와 주변 정비까지 완료하고 내년에 수리 준공식 개최, 수리보고서 발간 등을 마치면 석탑 보수정비 사업은 최종적으로 마무리된다.

 

미륵사터 석탑 보수정비는 단일 문화재로는 최장기간 동안 체계적인 수리를 진행한 사례이다. 특히, 국제적 기준에 따라 학술조사와 해체ㆍ수리 과정을 충실히 이행하였다는 점에서 석조문화재 수리의 선도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원래의 부재를 최대한 재사용하여 문화재의 진정성을 확보하고 과학적 연구를 통해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다만, 이 석탑이 일반에 공개되면 복원한 지 20년 되었지만 시선이 곱지 않은 동탑과 함께 어색한 동거가 시작될 것으로 보여 아쉬움을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