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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초희, 그 안타까운 이름이여!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95]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서울에서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 중부 제3터널을 통과하면 고속도로는 곧바로 경안천에 다리를 적신다. 그러면 바로 오른쪽으로 높이 140m의 야산이 바짝 다가서 있고, 고속도로는 이 야산의 발등을 타고 지나간다. 바로 이 야산 자락에 비운의 여류시인 허난설헌이 잠들어 있다. 난설헌의 무덤에서 고속도로까지 직선거리로 불과 100m!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쌔~앵~”하며 난설헌의 옆을 지나가지만, 과연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자신이 허난설헌 옆을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중부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무갑산이 난설헌의 묘를 내려다보고 있다. 태양이 뜨겁게 대지를 달구는 8월의 어느 날 무갑산에 올랐다가 난설헌의 묘를 찾았다. 고속도로 밑의 토끼굴을 지나 난설헌에게 다가가니 먼저 송덕비가 눈에 띈다. 중부고속도로를 건설할 때 난설헌의 남편 김성립이 속한 안동김씨 문중에서 흔쾌히 땅을 내놓은 것을 기리는 송덕비로, 2000년 1월에 시행자인 한국도로공사와 건설사인 쌍룡건설이 세운 송덕비이다.

 

묘역으로 다가가는데, 난설헌 무덤 왼쪽으로 아기 때 죽은 난설헌의 두 아이의 무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기 무덤이라 봉분은 작게 솟아있고, 남매가 외롭지 말라고 봉분은 서로 어깨를 비비고 있다. 아이들 무덤 앞에는 난설헌의 오빠 허봉이 아이들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쓴 한문글을 번역문과 함께 새긴 묘비가 있다.

 

 

“피어보지도 못하고 진 희윤아! 희윤의 아버지 성립(誠立)은 나의 매부요, 할아버지 담(膽)이 나의 벗이로다. 눈물을 흘리면서 쓰는 비문, 맑고 맑은 얼굴에 반짝이던 그 눈! 만고의 슬픔을 이 한 곡(哭)에 부치노라.” 여동생의 슬픔을 그대로 자기의 슬픔으로 느끼는 허봉! 그 허봉의 아픔이 그대로 나에게 전해지는 듯하다. 그런데 아들 희윤의 이름만 있는 것으로 보아서, 난설헌의 딸은 채 이름도 짓기 전에 죽은 것일까?

 

이제 난설헌의 무덤으로 다가간다. 무덤 옆에는 그녀를 기리는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다. 그런데 난설헌의 무덤 앞 상석에는 꽃다발 한 묶음이 소주병과 소주를 담은 잔 하나와 함께 올려있다. 그리고 두 여인이 그 앞에서 난설헌을 향하여 절을 한다. 절을 하고 일어서는 여인들을 바라보니, 한 여인은 아직 앳된 티를 벗어나지 못한 젊은 여인이고, 또 한 명은 중년의 여인이다. 모녀지간이란다.

 

허난설헌을 열렬히 추종하는 문학소녀와 그녀의 어머니가 매년 난설헌을 찾아와 이렇게 난설헌에게 꽃을 바치고 술잔을 올리고 있단다. 오호! 난설헌의 문학세계를 따라가고자 이렇게 난설헌을 찾아오는 여인들이 있었다니! 난설헌을 찾아왔다가, 생각지도 않게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만나는구나. 나 또한 난설헌의 무덤 앞에서 잠시 목례를 올린다.

 

난설헌(蘭雪軒)! 아니, 비록 아름다운 당호이기는 하나, 나는 그녀의 이름 그대로 부르고 싶다. “초희(楚姬)! 나 또한 당신이 그리워 이렇게 찾아왔소. ‘나에게는 3가지 한(恨)이 있다. 여자로 태어난 한, 조선에 태어난 한, 김성립의 아내가 된 한!’ 이렇게 절규했던 당신! 주자 학 일본주의(一本主義) 아래에서 여성을 억압했던 조선, 특히 자신보다 뛰어난 아내를 이해 못하고 박해하였던 시어머니 송씨와 남편 김성립 밑에서 초희, 당신은 얼마나 외로웠소!”

 

 

초희의 한을 생각하다보니, 가슴 한편이 아릿하다. “아! 나도 소주 한 잔 받쳐 올리는 건데...” 이렇게 3가지 한에 가슴이 멍들어가던 초희는 두 아이를 잃자, 27살의 젊은 나이에 그나마 시를 통하여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이 세상에 대한 끈을 놓아버린다. 시비에는 아이를 잃고 통곡하며 쓴 ‘곡자(哭子)’라는 시가 새겨져 있다.

 

   去年喪愛女(거년상애녀) 지난해에 귀여운 딸애 여의고

   今年喪愛子(금년상애자) 올해는 사랑스러운 아들을 잃었도다

   哀哀廣陵土(애애광릉토) 아! 서럽고도 서러워라. 광릉땅이여

   雙墳相對起(쌍분상대기) 두 아이 무덤 나란히 앞에 있구나

   蕭蕭白楊風(소소백양풍) 사시나무 가지엔 쓸쓸한 바람만 불고

   鬼火明松楸(귀화명송추) 도깨비불 무덤에 어리비치네

   紙錢招汝魂(지전초여혼) 지전 올려 너희의 혼을 부르고

   玄酒奠汝丘(현주전여구) 맑은 정화수를 너희 무덤에 부으며

   應知第兄魂(응지제형혼) 응당 알고말고 너희의 넋이야

   夜夜相追遊(야야상추유) 밤마다 서로서로 어울려 놀테지

   縱有腹中孩(종유복중해) 아무리 태중에 아해를 가졌다한들

   安可冀長成(안가기장성) 어찌 잘 자라기를 바라겠는가

   浪吟黃臺詞(랑음황대사) 부질없이 황대사 읊조리면서

   血泣悲呑聲(혈읍비탄성) 애끓는 피눈물에 목이 메인다

 

어떤가? 시에서 초희의 슬픔이 그대로 배어나오지 않는가? 그런데 태중에 아해를 가졌다하니, 초희는 이 시를 쓸 때 뱃속에 또 다른 아이를 잉태하고 있었구나. 그러나 그 아이는 결국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초희와 함께 언니들을 보러 저 세상으로 간 것이고……. 빛도 보지 못하고 언니들을 따라간 아이를 생각하자니, 가슴 한편의 아릿함이 차츰차츰 가슴 전체로 퍼져 나가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초희의 시가 원래부터 이렇게 어두웠던 것은 아니다. 초희가 처녀 때 쓴 그네뛰기 시 ‘추천사(鞦韆詞)’를 보자.

 

隣家女伴競鞦韆(린가여반경추천) 이웃집 친구들과 그네뛰기 시합을 했어요

結帶蟠市學半仙(결대반시학반선) 띠를 매고 수건 두르니 마치 선녀가 된 것 같았어요

風送綵繩天上去(풍송채승천상거) 바람을 차며 오색 그넷줄 하늘로 날아오르자

佩聲時落綠楊煙(패성시낙녹양연) 댕그랑 노리개 소리 울리고 푸른 버드나무엔 아지랑이 피어났어요

 

소녀의 풋풋한 감성이 그네와 함께 날아오르지 않는가? 초희의 이런 상큼한 녹색의 시세계가 혼인과 함께 회색빛으로 변해간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리고 27살이라는 너무나 짧은 시간 속에 초희가 미처 시의 감성을 마음껏 펼쳐보지 못하고 먼저 간 아이들을 따라가다니…….

 

그런데 사실 그녀의 동생 허균이 아니었으면 그나마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초희 시는 영영 햇빛을 보지 못할 뻔했다. 초희는 숨을 거두면서 자신의 시를 모두 불태워버리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차마 누나의 시를 그대로 어둠 속에 묻혀버릴 수가 없었던 허균이 본가에 남아있던 누나 초희의 시와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초희의 시를 살려낸 것이다. 허균의 덕에 초희의 시는 압록강을 건너 중국 사대부들의 가슴에도 울림을 주었고, 또 오늘날에도 이렇게 초희를 찾아오는 후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계단을 하나 더 오르니 그 위의 묘역에는 초희의 남편 김성립이 후처 송 씨와 함께 누워있다. 초희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김성립은 결국 죽어서도 초희를 자기 발치에 두고 자신은 후처와 함께 영면(永眠)하고 있는 것인가? 사실 이들의 무덤은 원래 여기서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초희의 명성을 익히 아는 김성립의 후손들은 무덤을 옮기면서 초희를 김성립의 옆에 함께 이장하는 것에 대해서 논의를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설왕설래 끝에 원래의 놓였던 자리 그대로 이장하였다.

 

무덤을 바라본다. 아무래도 김성립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곱지는 않다. “그래! 그게 당신의 한계였고, 조선의 한계였겠지.” 돌아서는 나의 눈 바로 앞으로 차들이 이곳에 눈길을 돌릴 새가 없이 바쁘다는 듯이 고속도로를 쌩쌩 달려 나가고 있다. 초희 무덤 옆을 스쳐 걸음을 아랫계단으로 옮긴다. 아무래도 쉽게 걸음이 떼어지지 않는다.

 

죽어서도 남편 옆에 있을 수 없는 초희를 후손들은 그나마 조용히 쉬게 하지도 못하고 있으니……. “그대 초희여! 그곳에선 사랑하는 아이들과 잘 지내고 있겠지요? 그곳에선 곡자(哭子) 같은 시는 접어두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위한 따뜻한 시의 세계를 펼치시고 있다고 믿소.” 다시 한 번 조용히 초희에게 눈인사를 하며 초희가 잠든 곳을 느릿느릿 떠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