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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경복궁 수정전은 세종 때 집현전이었던 자리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846]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경복궁 근정전 서쪽, 경회루 남쪽에는 보물 제1760호로 지정된 수정전(修政殿)이란 전각이 있습니다. 수정전은 건물의 간수(間數)로 따졌을 때 현존하는 경복궁 전각 가운데 규모가 큰 건물로 정면 10간, 측면 4간의 모두 40간 크기이며, 겹처마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습니다. 현재 수정전은 수정전 건물 한 채만 달랑 남아 있지만 1908년 그린 것으로 짐작되는 <북궐도형>에 따르면 수정전 주변이 200간이나 되는 행각(行閣)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영추문까지 대전장방(大殿長房)ㆍ수라간(水刺間)ㆍ빈청(賓廳)ㆍ의관방(醫官房)ㆍ내각(內閣) 따위의 전각들이 즐비하게 있었지요.

 

 

세종 때는 이곳에 집현전(集賢殿)을 설치하여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창제ㆍ반포되는데 이바지 했으며, 《훈민정음 해례》는 물론 《고려사(高麗史)》, 《농사직설(農事直說)》, 《오례의(五禮儀)》, 《팔도지리지(八道地理志)》, 《삼강행실(三綱行實)》, 《치평요람(治平要覽)》, 《동국정운(東國正韻)》,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석보상절(釋譜詳節)》,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의방유취(醫方類聚)》 따위 책을 펴내, 우리나라 문화사상 황금기를 이루게 하였습니다.

 

세조 때는 예문관(藝文館)으로 쓰였으나 임진왜란으로 불탔으며 고종 4년(1867) 다시 지은 뒤 군국기무소(軍國機務所, 갑오개혁 당시 개혁을 추진한 최고 정책 결정 기관)와 내각(內閣) 청사로 쓰기도 했지요. 그런가하면 일제강점기에는 행각을 모두 헐어내고 박람회장으로 쓰는 수모를 겪다가 1966년에는 어처구니없게도 이곳에 현 국립민속박물관의 전신인 ’민속관(民俗館)’을 개관하기도 했었습니다. 파란만장한 운명 속에 부침을 거듭해 온 수정전은 세종 때 집현전이었던 곳이기에 그 뜻이 남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