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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새 깃 모양 금동제 모자꾸미개(관식)

[큐레이터 추천유물 62]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금동제 모자꾸미개(관식, 冠飾) 가운데는 고구려와 신라 모자꾸미개에서 주로 보이는 새 깃 모양 장식[羽毛形冠飾]이 있습니다. 이 금동제 모자 꾸미개는 가장자리를 새 깃털 모양으로 잘라 새를 상징적으로 도안화한 것입니다.

 

고구려의 모자꾸미개는 중국 동북지역의 북연(北燕) 문화나 북방 유목 문화와의 관계 속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에는 신라에서도 많이 만듭니다. 새를 꾸밈의 소재로 삼은 것은 새를 믿는 신앙에 바탕을 두며, 이러한 신앙은 유라시아와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한반도(한돌곶)와 일본열도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분포되어 있습니다.

 

고구려인은 영혼의 안내자인 새를 현세와 내세를 오가는 영적 동물로 인식하였으며, 무덤에 묻힌 사람이 신선세계로 올라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길잡이로 여겼습니다. 이렇게 길잡이 역할을 하는 데는 여러 영적(靈的) 동물들이 있지만, 특히 새가 신선세계로 오르는 피장자의 영혼을 안내하는 조력자로서 자주 등장합니다. 이 새 깃 모양 모자 꾸미개는 바로 고구려인의 내세관을 보여주는 모자꾸미개며, 삶이 현세를 떠나 내세로 이어진다고 믿는 도교적 계세관(繼世觀, 저 세상에서도 현세처럼 KFADL 이어진다고 믿는 사소방식)이 들어있는 꾸미개입니다.

 

 

새의 깃을 금속제 모자꾸미개로 디자인

 

고구려의 새 깃 모양 금속제 꾸미개는 비상하는 새의 형상이나 새의 날개 또는 깃과 털을 금속제판에 표현하여 관모 꾸미개로 썼습니다. 이 금동제 모자 꾸미개는 새의 깃과 털 모양을 도안화한 것인데, 앞을 꾸미는 것 1매와 좌우 입식 각 1개를 써서 모자 꾸미개를 장식하였습니다.

 

왼쪽 꾸미개와 오른쪽 꾸미개의 아랫부분은 모자 꾸미개에 꽂을 수 있도록 비스듬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모자 꾸미개의 아랫부분을 따라가며 장식하던 폭이 좁은 금동 띠[帶]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좌우꾸미개는 관모에 꽂아서 사용하였던 장식으로 짐작됩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오른쪽 꾸미개 아랫부분의 가늘게 자른 깃 사이에 서로 엮어 올라가는 금동 실[金銅絲]이 일부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새 깃 모양 모자 꾸미개와 모자 꾸미개 아랫부분을 단단히 결합하여 고정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크기는 전립식의 폭이 가장 넓고, 좌·우 입식의 폭이 조금 좁은데, 관모 쓴 사람을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꾸밈 효과를 한층 더 높이기 위한 의도로 보입니다. 모자 꾸미개의 가운데 부분에는 세로 방향으로 가면서 연속적으로 구멍을 뚫어 표현한 8개의 투조인동무늬(透彫忍冬文)을 새겼습니다. 인동무늬과 연꽃무늬는 불교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무늬지만, 불교 맏음 여부에 상관없이 고구려의 여러 마당에 널리 쓰였습니다. 이렇게 복합적인 성격의 무늬가 하나의 장식판에 표현된 것은 당시 고구려 사회의 정신세계가 이미 여러 종류의 신앙과 종교의 바탕 위에서 꾸려나갔음을 드러냅니다.

 

고구려의 금속제 관과 인동무늬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고구려 유적 출토 새 관련 금속제 관모 장식에는 새 깃 모양[鳥羽形] 장식과 새 날개 모양[鳥翼形] 꾸미개 그리고 새 깃과 날개가 함께 표현된 장식 등이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동제관식 이외에도 지린성(吉林省) 지안(集安)과 우산묘구(禹山墓區)에서 출토된 모자 꾸미개는 가운데에 새 깃 모양 전립식을, 좌우 양쪽에는 새 날개 모양 꾸미개를 각각 꽂은 모양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동제관식이 전립식, 좌입식, 우입식 모두 새 깃 모양인데 견주어, 지안 출토품은 전립식은 새 깃 모양이지만, 좌우에 새 날개 모양 관식을 꽂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크게 보아 새를 꾸밈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믿는 신앙과 불교적 분위기가 결합된 평양시 대성구역 청암리토성 출토 금동관은 전체적으로 화염상 불상 보관과 비슷한 형태입니다. 연꽃무늬, 연꽃당초무늬, 인동문무늬, 연주무니 등 주요 불교적 문양 요소들이 뚫림조각되어 있습니다. 특히 큰 테와 일체형인 불꽃 모양 꾸미개의 윗부분을 꽃봉오리 모양으로 뚫림조각하고 그 가장자리를 새 깃 모양으로 만든 부분이 확인됩니다.

 

이와 같이 서로 다른 신앙적, 종교적 상징 요소가 하나의 위엄 있는 물건에 표현되어 있다는 것은 고구려인들의 정신세계가 여러 가지 믿음이 복합되어 이루어진 것임을 반증합니다.

 

고구려 고분벽화와 고문헌에 생생하게 묘사된 모자꾸미개

 

고구려의 고분벽화에는 실제 새 깃으로 무자를 꾸민 것과 금속제 관식으로 모자를 꾸민 것이 있습니다. 앞의 경우로는 무용총 수렵도의 기마인물과 쌍영총 연도 인물이 쓰고 있는 새 깃 장식 관모, 감신총(龕神塚) 서벽에 그려진 인물이 쓰고 있는 새 깃 장식 투구(冑)가 있습니다. 뒤 경우로는 개마총(鎧馬塚) 현실(玄室)에 각각 그려진 새 날개 모양 관식을 쓴 사람과 새 깃 모양 관식을 쓴 사람이 있습니다. 새 날개 모양 새 날개 모양 관식을 쓴 사람의 것은 전립식 없이 관모 하단 좌우에 새 날개 모양 관식을 하나씩 꽂은 것이고, 새 깃 모양 모자 꾸미개를 쓴 사람의 것은 새 깃 모양 전립식에 새 날개 모양 좌우 입식을 각각 한 개씩 꽂은 것입니다.

 

또한 중국 당대 장회태자 이현(李賢, 654~684)의 무덤(8세기 초) 널길(고분의 입구에서 주거을 안치한 방까지 이르는 길)에 그려진 접견도에서는 신라 사신이 쓴 새 깃 모양 관이 확인되며, 둔황(敦煌)의 막고굴(莫高窟) 벽화에서는 새 깃 모양 관을 쓴 삼국시대(7세기 중엽) 인물이 159호, 220호, 335호굴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여기서는 8세기 후반 통일신라의 사신으로 추정되는 새 깃 모양 관을 쓴 인물도 확인되어 당시 복식사 연구에 유용한 자료로 활용됩니다.

 

고문헌 가운데 《위서》 열전 고구려조(魏書 列傳 高句麗條)에는 “대개 머리에 절풍을 쓰는데 그 모양은 고깔과 같고, 새 깃을 꽂아서 귀하고 천함에 차이를 둔다.(頭著折風 其形如弁 旁揷鳥羽 貴賤有差)”는 기록이 있습니다. 《구당서》 고려전(舊唐書 高麗傳)에서는 “관을 쓴 사람은 귀한 사람인데 청라로 관을 만들고, 그 다음 등급은 비라로 관을 만든다. 관에 두 개의 새 깃을 꽂고 금은으로 장식한다(冠之貴者 則靑羅爲冠 次以緋羅 揷二鳥羽及金銀爲飾)”고 하였으며, 한원(翰苑)에서는 “칼과 숫돌을 차는 것으로 등급을 구별할 수 있고, 금제 새 깃으로 귀천을 알 수 있다.(佩刀礪 而見等威 金羽以明貴賤)”고 하였습니다.

 

새 깃을 꽂는 습속은 관리의 등급 구분보다는, 아마도 사회적 인품의 귀하고 천함을 알 수 있게 하는 근거였던 셈입니다. 이외에도 수서(隋書), 북사(北史), 당서(唐書) 등에 새 깃을 꽂는 습속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분벽화와 고문헌에 보이는 새 깃 모양 관 착용 습속은 실제 새의 깃 또는 금속제 새 깃을 관이나 관모에 꽂아서 사용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고구려의 경우에는 금속제 모자꾸미개를 무덤에 묻기만 한 것이 아니라 왕이나 고위귀족들이 실제로 착용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구려와 신라 고분 출토 새 깃 모양 관식의 유사성은 상호 문화교류에 기인

 

 

고구려의 새 깃 모양 모자꾸미개는 5~6세기대 신라 고총고분에서도 출토됩니다. 경주 황남대총 출토 은관(銀冠)은 새 날개 모양 입식판(立飾板)의 가장자리를 가늘게 잘라서 새 깃털 모양으로 만든 것이며, 금동제와 은제의 새 날개 모양 모자꾸미개도 출토되었습니다. 5세기 때 이래 고구려와 신라의 정치적, 문화적 교류가 활발하였던 시기에 신앙과 제의 문화도 더욱 밀접하게 공유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경북 의성 탑리 고분에서는 고구려 새 깃 모양 모자꾸미개와 유사한 새 깃 모양 입식이 장식된 금동관과 금동제 새 날개 모양 모자꾸미개, 나비 모양 모자꾸미개가 출토되었습니다. 탑리 제1묘곽은 신라 왕실 중심의 유력자들이 만들어 쓰던 무덤인 적석목곽분입니다. 또한 새 깃 모양 입식 금동관을 껴묻은 것으로 보아, 무덤의 주인은 신라 경주의 중앙정부에서 파견된 지방관 같은 유력자로 이해됩니다.

 

이밖에도 대구 비산동37-2석실분과 구미 황상동고분에서 새 깃 모양 모자꾸미개가 출토되어, 신라권역 안에서도 중앙과 지방 모두 폭 넓게 신령한 새와 신선세계로 올라가는 등선(登仙) 등 현실 세계를 떠난 다른 세계에 관한 관념[他界觀]을 공유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