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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편지

똥보다 더러운 친일 주지를 호통한 한용운 선생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850]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총독부가 이른바 ‘내선(內鮮) 불교 정책’을 세우고 31본산(本山)을 결성, 만해 한용운 선생을 연사로 초청했습니다. 억지로 끌려나온 그는 단 2분 동안의 자문자답으로 강연을 마쳤지요. “세상에 제일 더러운 것은? / 똥! / 똥보다 더 더러운 것은? / 썩고 있는 시체! / 그보다 더한 것은? / 31본산 주지 너희 놈들이다!” 똥 옆에서는 밥을 먹을 수 있어도 송장 썩는 옆에서는 차마 음식이 입에 들어가지 못하는데 그보다 더 더러운 것은 일제 총독부에 빌붙은 31본산 주지들이라며 호되게 꾸짖은 것이었습니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해서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의 사회장(社會葬) 발기인이 되기를 거부한 만해는 독립군 지휘자 김동삼(金東三) 선생이 옥에서 순국한 뒤 주검이 되어 나왔는데, 아무도 무서워 나서지 않았을 때 만해가 나서서 깎듯이 장례를 치러주었다고 합니다. 또 선생은 일본어를 모르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고, 검은 한복에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니며 원고지에다 ‘내지(內地, 日本)’라 써야 할 경우 빈 칸으로 남겨두고 쓰지 않았습니다.

 

 

선생은 불교 개혁을 이끈 스님이었지만, 훌륭한 문학가이기도 했지요. 선생이 1926년에 펴낸 시집 《님의 침묵》은 승려로서의 깨달음과 독립에 대한 의지를 잘 담아냈는데 나라를 잃은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에 빗대어 표현한 것입니다. 선생은 환갑을 넘긴 나이임에도 1940년 창씨개명 반대운동, 1943년 조선인 학병출정 반대운동 등을 펴기도 한 우리 겨레가 낳은 위대한 승려이자 저항시인이요 독립투사였습니다. 선생은 1944년 오늘(6월 29일) 그토록 그리던 조국광복을 눈앞에 두고 입적하고 말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