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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병창은 소리와 가야금 연주력이 함께 뛰어나야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373]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경북 포항에서 오랜 기간 가야금병창 분야의 연주활동을 해 오고 있는 임종복의 활동상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가야금병창>이란 소리꾼이 가야금을 스스로 연주하면서 단가나 민요, 또는 판소리의 눈 대목 등을 부르는 연창의 형태라는 점, 임종복은 장월중선(張月中仙, 본명-순애)의 소리제를 잇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으며 스승의 유음을 가다듬기 위해 스승의 장녀인 정순임 명창에게 소리전반을 공부하고 있다는 점을 애기했다.

 

또 문화체육관광부는 장판개-장월중선-정순임으로 3대째 이어지는 집안을 판소리의 명가(名家)로 지정하였으며 장월중선은 1960년대 초부터 경주에 정착하여 판소리, 가야금산조와 병창, 아쟁산조, 민속춤 등, 다양한 장르를 전승시켜 왔다는 점, 경상북도는 장월중선의 판소리와 가야금병창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경주시에서는 판소리를 기본으로 하는 창극공연과 전국 국악경연대회, 학술행사 등을 매해 열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우리가 경험해 본 것처럼, 노래는 혼자 부를 때와 반주악기가 곁들여 질 때가 전혀 다르게 반응한다. 선율악기의 반주가 있다면 음정을 가늠할 수 있고, 선율의 흐름을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어서 그래도 마음이 놓인다.

 

음(音)이라고 하는 것이 마음 상태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지만, 어느 정도 체력이 유지될 때에는 음정이 올라가기 쉽고, 반대의 경우에는 떨어지기 쉽다. 그래서 오랜 시간 노래를 부를 경우, 창자 자신은 음정의 식별이 용이치 않게 마련이다. 이러할 경우에 선율악기들의 반주가 따라주거나 타악기의 반주가 리듬을 잡아 준다면 노래의 흐름이나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어서 노래 부르기가 훨씬 편해진다. 노래방에서는 누구든지 뛰어난 가수가 되지만, 반주 없이 혼자 부를 때에는 달라지는 경우를 경험했을 것이다.

 

가령, 1시간 이상, 또는 3~5시간 이상 판소리를 부르게 될 경우에, 장단을 맞춰주는 고수가 없다면 과연 창자 혼자가 불러나갈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어렵다'이다. 어려운 것이 아니라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아주 오래전의 실화이다. 박동진 명창을 우리 대학에 초빙해서 흥보가를 감상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당일 전속으로 함께 다니는 고수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동행을 하지 못한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배우는 중에 있는 학생고수를 무대에 올려 반주에 임하도록 했다.

 

처음엔 그런대로 시작이 되는 듯 했으나 얼마 지나지 공식 감상회는 끝났다. 예정 시간을 반도 채우지 못한 채 명창은 몹시 힘들어하면서 더 이상 부르기를 포기하고 말았던 기억이 있다. 북을 잡은 고수(鼓手)가 악곡의 빠르기나 강약, 기타 음악적 분위기를 안정적으로 이끌어 주지 못하면 천하의 명창이라도 소리를 이어가기 어렵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 셈이다. 판소리뿐이 아니다.

 

느짓한 가곡이나 시조, 또는 민요나 민속의 소리 전반이 반주악기 없이 혼자서 노래를 부른다면 매우 힘들고 어려울 것이다. 이에 견주어 가야금병창은 창자가 가야금을 스스로 타면서 부르기 때문에 음정의 안정감뿐이 아니라, 선율 연결, 강약, 흐름, 그리고 장단까지도 맞추어 갈 수 있다.

 

반주가 있다고 해서 창(唱)의 선율을 가야금이 그대로 따라가는 동일한 진행은 차라리 없는 편이 좋을 것이다. 상호 보완적으로 진행이 되어야 한다. 가령, 소리의 선율이 잘게 쪼개지고 잔가락이 많이 나올 때에 가야금은 창과 동일하게 진행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음 위주로 단순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반대로 노래가 한 음으로 길게 지속될 경우, 가야금 반주는 가락을 넣어 선율을 꾸미고 장단감을 느끼게 해 주면서 대비가 되어야 들을 맛이 나는 법이다. 특히 진양과 같은 느린 6박장단에서 창은 주로 제4박에서 멈추고 나머지 5,6박은 가야금 가락으로 처리한다. 장단의 끝을 가야금 가락으로 해결하고 다음 장단의 시작을 가야금 반주로 예비함으로써 노래를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가야금병창과 같이 한 사람의 창자가 가야금을 타면서 동시에 창을 해야 하는 1인 2역의 과정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소리가 어느 정도 익었다고 해도 가야금 연주력이 부족하면 안정감이 떨어지게 마련이고, 또한 가야금은 능숙하게 연주한다고 해도 목이 따라주지 못하면 역시 싱거워지는 것이 병창이기에 이 분야를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병창이란 가야금을 무릎위에 얹어놓고 타면서 창을 하게 마련이어서 이미 소리의 주요 요소인 발림(몸동작이나 연기)을 제대로 펼칠 수 없다는 한계를 안고 있는 종목이다. 그래서 같은 춘향가를 부른다고 해도 판소리로 부를 때와 병창으로 부를 때에는 음악을 만나는 느낌이 같지 않다.

 

여하튼 가야금 병창이란 두 장르를 완벽하게 다루어야 되는 분야이다.

 

스승 장월중선의 타계 후, 그 소리제는 점차 위축되어 왔으나 문화재 제도의 마련으로 오늘 우리가 그 소리를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선두에 서 있는 임종복이 이처럼 활발하게 공연활동이나 전승활동을 펼치고 있는 점도 고마운 일이다.

 

장월중선은 큰아버지 장판개로부터 소리를 익혔지만, 김채만-박동실로 이어지는 <심청가>와 <춘향가>와 같은 고제(古制)의 소리도 배웠고, <유관순 열사가>와 같은 창작 판소리도 잘 불렀다. 그래서 장월중선의 성음 속에는 조선조 고종 때의 명창, 장판개(본명-학순)의 성음도 담겨져 있고, 그런가 하면 서편제의 거장 박동실의 소리제를 비롯한 다양한 음악적 분위기가 장월중선에게 전해 졌는데, 이러한 다양한 소리가 그대로 임종복에게 이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임종복의 가야금 병창은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고 지켜주어야 할 이유도 분명한 것이라 믿는다.

 

지난 달, 포항지방에서 가졌던 임종복의 가야금병창 발표회에 올렸던 곡목들은 김채만-박동실-장월중선-정순임-임종복으로 이어지는 심청가 한바탕 중에서 중요한 눈대목들이었는데, 이 가운데는 박동실의 소리를 창자 임종복이 스스로 편곡한 대목도 포함되어 있어서 앞으로 그의 창작활동도 기대가 되는 것이다.

 

임종복이야말로 큰 선생의 유음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소리를 진정으로 좋아하며 항상 연구하는 자세로 소리 공부에 진력하는 모습이 진지하며 모범적이다. 또한 각종 공연무대나 발표무대, 전국 경연대회에서 소리공력을 인정받고 있는 점, 등으로 볼 때 큰 명창 반열에 이름을 올릴 날이 멀지 않았음을 예견할 수 있어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