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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민족

차보석 지사 훈장증, 칠순 조카가 받는데 5달이나 걸려

국가보훈처에 잠자고 있는 훈장증, 적극 찾아 줘야

[신한국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고모님(차보석 지사)의 훈장증을 받아드니 마치 고모님을 만난 듯 감동스럽습니다. 고모님이 2016년 8월 15일, 국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사실도 저는 까마득히 몰랐습니다. 하마터면 국가보훈처 책상 서랍 속에서 마냥 잠자고 있을 고모님의 훈장증을 받아드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이는 지난 7월 3일(화), 경기남부보훈지청(지청장 구남신)에서 여성독립운동가인 차보석 지사의 조카인 차영조 선생이 고모님의 훈장증을 받아든 소감이다.

 

차보석 지사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장관)을 지낸 동암 차리석(1881~1945, 1962년 독립장 추서) 선생의 여동생으로 1892년 평안남도 맹산 함종(咸從)에서 태어나 이화학당을 거쳐 일본 고베(神戶)가사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한 수재였다. 귀국한 뒤 1912년 대구신명여학교에서 4년간 교편을 잡으면서 재직 동안 교가(校歌)를 만드는 등 초창기 교풍 확립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차보석 지사는 23살 되던 해에 대구신명여학교를 떠나 평양으로 가서 오라버니인 차리석 선생과 교육사업을 펼치다가 3·1만세운동 직후 오라버니와 상해로 망명했다. 상해에서 흥사단에 참가하는 한편 1921년에는 재상해유일학생회(在上海留日學生會)를 맡아 활약했다. 그 뒤 차보석 지사가 미국으로 건너간 것은 30살 때인 1922년으로 미국에서도 조국독립을 위한 눈부신 활약은 끊이질 않았다. 그 활동을 보면 1925년 대한여자애국단(大韓女子愛國團) 샌프란시스코지부 단장을 거쳐 1926에서 1928년까지 대한여자애국단 총단장을 맡아 활약했다.

 

 

또한 이듬해인 1929년에는 이 단체의 서기, 재무 등을 맡아 헌신했다. 이 기간(1925~1928) 동안 샌프란시스코에서 국어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동포 자녀들에게 한국 혼을 심는데 주력했으며 1931년에는 국어학교 재무(財務) 일을 도맡았다. 1931년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에 입회하여 1932년 3·1절 기념식 준비위원 등으로 활약하였으며 1925년부터 1932년 3월 21일 숨을 거두기까지 고국에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함으로써 조국 독립의 기틀을 다지는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향년 40살로 먼 이국땅에서 후손 없이 숨을 거두기까지 차보석 지사는 교육가요, 독립운동가로서의 삶을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았다. 이러한 차보석 지사의 공훈을 기려 정부는 2016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문제는 차보석 지사의 훈장을 유일한 피붙이인 차영조 선생이 대리 수령을 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는 점이다.

 

 

기자와의 대담을 통해 고모님인 차보석 지사가 훈장 받은 사실을 안 조카 차영조 선생은 보훈처 책상 서랍 속에 잠자고 있는 고모님의 훈장을 대신 수령할 수 있는지 보훈처에 질의했다. (2018년 2월 5일, 국민신문고에 질의) 그러자 보훈처에서 다음과 같은 답이 왔다.

 

“독립운동가 고 차보석(2016 애족장)의 후손은 확인이 되지 않은 상태고 귀하께서 친족으로 확인되는 것도 사실로 확인됩니다. 다만 직계 후손이 없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직계 후손이 있는 지 확인한 뒤 (해외 자료 검토 및 확인 등에 3개월 소요) 후손이 없다고 판단되면 귀하께 훈장 대리 수령 여부를 검토하여 별도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3개월 정도 걸린다던 차보석 지사의 후손 확인 여부는 3개월이 지나고도 다시 2개월이 지난 뒤에서야 “후손 없음”을 확인하여 국가보훈처는 지난 7월 3일, 유일한 피붙이인 조카 차영조 선생 품으로 훈장을 전해주었다.

 

 

문제는 국가보훈처의 훈장 수령에 대한 철저한 관리 시스템이 허술하다는 점이다. 만일 기자가 차영조 선생에게 고모님인 차보석 지사의 서훈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차영조 선생은 영영 고모님의 서훈 사실을 몰랐을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미국에서 숨진 차보석 지사의 후손 여부를 미리 알아보지 않고 조카인 차영조 선생이 ‘훈장증 대리 수령’을 질의한 뒤에서야 미국에 후손 여부를 알아본다면서 5개월의 시간을 소비한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유공자로 선정된 분들은 살아생전에 훈장을 받지 못하고 사후에 추서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우 가능한 한 빨리 후손을 찾아 훈장을 전달하는 게 고인에 대한 예의요, 국가의 도리라고 본다. 이참에 국가보훈처에 묻고 싶다. 국가보훈처에는 차보석 지사처럼 수령되지 않고 잠자고 있는 훈장증이 얼마나 되는가 말이다.

 

아울러 직계 후손이 없는 경우 차영조 선생처럼 꿈에도 그리던 고모님을 만난 듯 ‘훈장증’ 이나마 대리 수령할 수 있는 기간을 단축하고 그 절차도 간편하게 해 줄 수 없는 것인지 묻고 싶다. 74살의 조카가 후손 없이 돌아가신 고모님의 훈장증을 대리 수령하기 위해 복잡한 민원 서류를 내고 5개월 씩 그 답을 기다리기에는 너무 힘들고 지치는 일이라는 걸 국가보훈처는 새겨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