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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개화기 한글 의학 교과서의 모든 것, 한자리서 만나다

국립한글박물관, “나는 몸이로소이다-개화기 한글 해부학 이야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한글박물관(관장 박영국)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해부학 교과서인 ‘제중원 《해부학》’을 소개하는 기획특별전 <나는 몸이로소이다-개화기 한글 해부학 이야기>를 2018년 7월 19일(목)부터 10월 14일(일)까지 국립한글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연다.

 

제중원 《해부학》 권1-3 초간본의 첫 공개

 

 

국립한글박물관은 한글문화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문화적 가치가 뛰어난 미공개 소장자료를 발굴하여 일반에 소개하는 ‘소장품 공개특별전’을 해마다 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소장품 공개특별전의 하나로 국립한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제중원 《해부학》’ 전질을 대중에게 처음 공개하는 자리이다. 국립한글박물관 소장품인 ‘제중원 《해부학》’ 권1-3은 1906년 펴낸 초간본으로 전질이 갖춰진 유일본이다.

 

그간 여러 기관에서 의학을 주제로 한 전시를 수차례 열었으나, ‘몸’에 대한 우리말과 문화의 역사를 조명한 기획특별전은 이번 전시가 국내 처음이다. 아울러 ‘제중원 《해부학》’과 함께 18개 기관 소장유물 127건 213점이 전면적으로 공개되는 이번 특별전은 규모 면에서도 전례가 없다.

 

최초의 한글 해부학 교과서인 ‘제중원 《해부학》’은 일본 해부학자 이마다 쓰카누(今田束, 1850-1889)의 《실용해부학(實用解剖學)》 권1-3(1888)을 제중원 의학생 김필순(金弼淳, 1880-1922)이 우리말로 번역하

고 제중원 의학교 교수 에비슨(魚丕信, Oliver R. Avison, 1860-1956)이 교열하여 1906년에 펴낸 책이다.

 

 

 

1885년(고종 22)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근대식 병원 제중원(濟衆院)은 조선인 의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한 한글 해부학 교과서가 필요하였다. 에비슨은 한국인 조수와 함께 그레이(Henry Gray, 1827-1861)의 《Anatomy of the Human Body》를 한글로 뒤쳤지만(번역) 조수의 죽음과 함께 완성된 원고도 사라졌고, 이후 김필순을 만나 재번역한 원고 역시 불타 없어졌다. 세 번째로 번역한 책이 바로 이마다의 《실용해부학》이다. 여러 번의 실패와 좌절을 딛고 다시 번역하는 일을 되풀이하면서 마침내 1906년 최초의 한글 해부학 교과서가 탄생하게 되었다.

 

몸에 대한 우리말의 변화상, 처음으로 한자리에

 

해부학은 근대 서양의학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기초 분야이다. 해부학 교과서는 몸을 대상화하고 과학적으로 분석한 서양의학의 세계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자료이다. 개화기에 한글로 번역된 해부학 교과서를 통해 낯선 서양의학과의 만남이 몸에 대한 우리말과 전통적 사고를 어떻게 바꾸게 되었는지 그 도입과 변화, 확산의 과정을 선보인다. 전시는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몸의 시대를 열다’는 몸에 대한 전통적 가치관과 근대 서양의학의 관점 차이를 비교한다. 1876년 개항 이후, 전통의학과 근대 서양의학의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만나면서 새로운 몸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사람의 몸을 열어 아픈 부위를 고치고 다시 꿰매는 서양의 외과 치료는 조선인들에게 커다란 문화적 충격을 주었다. 몸과 마음(정신)을 하나로 보는 동양과 달리 근대 서양에서는 몸은 물질일 뿐이고 그것을 지배하는 것은 정신이라고 보았다. 해부학적 지식을 기초로 하는 근대 서양의학을 받아들이는 일은 단순히 몸을 치료하는 문제를 넘어 몸에 대한 근본적인 세계관의 변화와 관련된 일이다. 따라서 이 전시에서는 개화기 전통 의학과 서양 의학의 인식 차이와 변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주목할 자료로는 조선시대 살인사건의 검시 보고서인 ‘검안(檢案)’이 있다. 이 보고서는 처음 공개되는 자료로, 1902년 강릉군 내면 운동동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인 「이운지 이경화 시신 검시 문안」(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1900년 남원군 남생면의 「이판술의 육세 아들과 이여광 이군필 이판용 사안」(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등은 주검의 흔적을 살피고 관련자 심문을 통해 사인을 밝히는 전통적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이밖에도 개화기에 전통적 가치관의 변화를 보여주는 자료로 이해조(李海朝, 1869-1927)의 《빈상설》(1907)(아단문고 소장)과 《홍도화》(1912)(서강대 로욜라도서관 소장) 등 신소설 9종이 소개된다.

 

 

 

 

2부 ‘몸을 정의하다’는 한글 창제 이후 개화기에 이르기까지 몸을 가리키는 우리말의 변화상을 선보인다. 우리말 몸 이름에는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한국인의 사고와 문화가 담겨 있다. 동양에서는 몸을 자연의 질서를 따르는 것으로 보고 몸의 각 기관을 동양의 철학, 음양오행(陰陽五行)과 연결시켜 설명하였다.

 

서양에서는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몸을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골격계(骨格系), 소식계(消食系) 등과 같이 서로 연관된 각 부분을 함께 묶어 설명하였다. 이처럼 서로 다른 두 세계의 만남은 우리말 몸의 이름과 뜻풀이를 바꾸었다. 문세영(文世榮, 1888-?)의 《수정증보조선어사전》(1940)에서는 우리 몸의 지식을 서구적 지식 체계로 바꾸어 설명하였고 해부학에 등장하는 새로운 몸 이름들을 담았다. 한편, 새로운 말들이 생겼어도 여전히 전통적 사고방식을 간직하고 있는 말들도 있다. 심장, 간, 쓸개 등 몸속 기관들의 일상적 표현에는 음양오행의 원리가 담겨 있다.

 

전시실은 <몸의 기둥, 뼈와 근육>, <마음의 집, 심장과 뇌>, <보고 듣고 느끼는 감각기관>, <서로 돕는 몸속 기관>의 네 가지 주제로 구성되었으며, 각 주제별로 몸에 대한 우리말과 문화, 새롭게 생겨나고 사라진 말들을 볼 수 있다. 또한 개화기 유리 건판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을 통해 110여 년 전 개화기 한국인의 얼굴과 우리말 특징 등을 확인할 수 있다.

 

 

 

 

3부 ‘최초의 한글 해부학 교과서’는 김필순과 에비슨이 펴낸 제중원 《해부학》을 소개하고, 개화기에 펴낸 여러 종류의 한글 의학 교과서를 한데 모아 그 의의를 살펴본다. 제중원과 세브란스병원 의학교는 한글 의학 교과서를 활발하게 펴냈다. 기록상으로는 30여 종을 펴냈다고 하나 현재 전하는 것은 14종이며, 이번 전시에 모두 선보인다.

 

《약물학 상권(무기질)》(1905)(한국학중앙연구원 도서관 소장)과 《신편화학교과서(무기질)》(1906)(연세대 학술정보원 소장), 《병리통론》(1907)(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외과총론》(1910)(연세대 동은의학박물관 소장)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한글 의학 교과서들은 대부분 영어나 일본어 책을 뒤친 것으로, 새로운 개념을 우리말로 전달하려고 노력한 흔적을 볼 수 있다.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기 전까지 서양의학의 새로운 지식을 우리말로 받아들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근대 건축의 공간 특징을 도입한 전시 연출

 

마지막으로 개화기 근대 건축의 공간 특성을 반영한 전시 공간 연출을 주목할 수 있다. 개화기 공간 속에서 관람객이 당시의 자료를 접할 수 있도록 하여 시대적 공감과 이해를 최대한 높이고자 한다. 또한 전시 도입부에는 무대 연출 영상인 ‘손탁호텔, 어느 ○○의 죽음’을 만날 수 있다. 서울 중구 정동에 있던 서울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손탁호텔에서 벌어진 죽음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조선 관리와 서양의사가 서로 다른 의학 용어를 쓰며 주검을 살피는 영상이다. 이를 통해 개화기 전통의학과 서양의학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관람객들의 전시 이해를 돕기 위해 <큐레이터와 함께 하는 전시 해설>을 운영한다. ‘몸을 가리키는 사라진 옛말’, ‘김필순과 에비슨의 해부학 번역 이야기’ 등 우리 몸과 말 관련 전문 해설이 4회 이루어질 예정이다. 이밖에 근대 건축의 특성을 살린 전시 연출과 영상 관련 전시 해설도 각 2회씩 마련되어 있다. 세부 일정은 박물관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