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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칠실파려안’, 조선에 처음 등장한 사진기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871]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복암이 일찍이 선중 씨 집에 칠실파려안을 설치하고, 거기에 비친 거꾸로 된 그림자를 취하여 화상을 그리게 했다. 공은 뜰에 놓은 의자에 해를 마주하고 앉았다. 털끝 하나만 움직여도 초상을 그릴 길이 없는데, 흙으로 만든 사람처럼 굳은 채 오래도록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는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문집인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조선에는 이렇게 사진이란 것이 처음 등장했지만 사실은 사진이 아니라 바늘구멍상자의 유리에 비친 화상에 종이를 대고 그린 그림이지요. 이것은 사진기의 전신인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 바늘구멍상자)로 복암 이기양 등 실학자들이 ‘칠실파려안(漆室玻瓈眼)’이라 이름 붙이고 연구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칠실(漆室)은 ‘매우 캄캄한 방’, 파려(玻瓈)는 ‘유리’, 안(眼)은 ‘보다’를 뜻하는 것으로 '캄캄한 방에서 유리렌즈를 통해서 본다'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에 바늘구멍상자가 아닌 실제 사진을 찍은 것은 연행사였던 이의익 일행이 1863년 북경의 러시아인이 운영하던 사진관에서 찍은 것이라고 합니다. 또 조선에 사진관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83년으로 황철이란 사람이 촬영국을 만들고 초상사진과 기록사진을 찍었으며, 같은 해 김용원이란 사람도 일본인 사진사를 불러와 서울에 촬영국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조선 최초의 상업사진관은 1907년 김규진이 지금 조선호텔 부근에 세운 “천연당사진관”이라고 알려졌습니다. 이제 디지털카메라를 가진 사람도 많고, 슬기전화(스마트폰)로도 얼마든지 사진을 찍을 수 있어 예전의 칠실파려안은 물론 사진관까지도 추억거리로 남아 있게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