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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화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

말 한마디가 천냥 무게 / 조금화

[석화 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 32]

[신한국문화신문=석화 시인]  “말 한마디가 천냥무게”, 제목을 달고 보니 기쁨 반 슬픔 반, 야릇한 웃음이 입가로 스쳐 지난다. 그래도 내 맘은 ‘행복한 웃음인데’라고 알려준다. 그래 그랬었지. 그때 그 순간만큼은 행복했고 감격스러웠다.

 

벌써 13년 세월이 흘렀다. 젊은 나이에 유방암진단을 받고 집안사정으로 지방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어느 날 저녁, 주치의사랑 저녁식사를 마친 남편이 휘청거리며 집에 들어서더니 나를 흘깃 보는데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하였다 순간 신경이 예민해진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의사선생님이 뭔 말씀했길래 저럴까? 설마…... 나는 다짜고짜 남편을 침실로 잡아끌었다.

 

“당신 왜 울어요? 정작 울어야 할 사람은 나인데. 당신이 이렇게 약한 모습 보이면 난 누구한테 의지해야 돼요?”

 

그러자 입이 천근무게인 남편이 나를 꼭 안아주며 “동무 죽으면 나도 따라 죽겠소.” 라고 하면서 슬프게 우는 것이었다. 맙소사. 내가 뭔 일을 저질렀지 나 때문에 많은 사람 울리고 가슴 아프게 하고 진짜 내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면서도 맘 한구석으로 난류가 흐르고 감격의 물결이 이는 것을 어쩌랴. 맨날 무뚝뚝하고 자기중심적이어서 “돼지”라고 나무람만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를 이렇게 아껴주다니 그때만큼은 남편도 폐부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그날 밤 난 내가 정말 시집을 잘 갔다고 생각하면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다가 남편의 손을 살며시 잡고 넓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소르르 잠들었다. 이튿날 내 맘은 간만에 즐거웠고 행복했다. 저녁식사 뒤 나는 조용히 남편을 불렀다.

 

“여보 지금 나도 당신도 넘 힘들어요. 하지만 우리한테 포기란 없어요. 우리 이 고비 잘 넘겨서 딸애한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야하지 않을까요? 지금 울집엔 나보다 당신이 더 필요해요. 어제 그 말 내 맘속에 간직하고 갈게요. 당신 그 말 한마디에 내가 헛되게 안 살았음을 느꼈어요. 우리 힘냅시다. 이제부턴 난 홀로서기 하렵니다. 그래야 당신도 살고 나도 살고 우리가족이 미래가 있지요.”

 

묵묵히 듣고만 있던 남편이 알았다고 하더니 다시는 약한 모습을 안 보이는 것이었다. 그뒤로 남편은 여덟 번 입원치료 할 때마다 젖먹이 애기를 탁아소에 두고 가는 심정으로 나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퇴근해서는 곧바로 달려와서 때로는 발도 씻겨주고 때로는 머리도 감겨주고 때로는 이마도 쓸어주며 지극정성을 다하였다.

 

어디 그뿐이랴 항암주사를 맞을 땐 10시간 이상 점적주사(정맥에 주사침을 꼽고 한 방울씩 체내에 들어가게 하는 주사)를 맞는데 힘든 내색 않고 옆에 앉아서 지키다가 밤중이면 집으로 돌아가군 했다. 지친 남편의 모습을 보는 내 맘은 짠해 났고 씩씩해지리라 맘속으로 다짐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암에는 약이 없다는데 남편의 사랑을 먹고 힘내서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내 맘에는 남편에 대한 고마움으로 가득 찼고 그래서 이런 남편과 평생을 살고 싶어서 더욱 아득바득했는지도 모르겠다. 맘 한구석에는 보답이란 두 글자가 서서히 자리를 차지하면서 뭐든 남편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당시 집을 대출금으로 산 형편이라 치료비도 월급으로 해결한 나는 입을 악물었다.

 

‘이렇게 죽을 순 업지. 딸을 내 손으로 시집보내고 내가 남편한테 유일한 여자로 될 거야.’

 

참 욕심도 굴뚝 같고 죽기 싫은 이유도 가지가지다. 암튼 남편의 정성어린 보살핌으로 나는 일 년 뒤 다시 출근할 수 있었다. 전반 치료과정에 난 알뜰하게 월급으로 해결했다. 그리고 수중에 현금 6만 원 정도가 되니 한국에 있는 둘째언니한테 도움을 청했다. 돈 좀 빌려 차를 사서 남편의 기를 살려주고 싶었다. 언니들은 한숨을 쉬며 아픈데 돈 다 쓰지 말라 했지만 내 고집을 꺾지 못했다. 당시 남편의 반대도 무릅쓰고 20만 원정도 주고 차한대 뽑아서 선물했다. 내가 죽으면 함께 죽을 생각한 남편인데 아깝지 않았다.

 

남편은 차를 그처럼 애지중지하면서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고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기뻤다. 어느 날 남편이 나보고 차를 산후로 일이 잘 풀리는 것 같다며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주말마다 남편은 나를 상전처럼 모시고 모아산으로 또는 공기 좋은 곳으로 그 어디든 무작정 달려갔고 유기농남새(채소)라면 어떻게든 얻어다 나를 먹였다. 그래서인지 몸은 항상 오동통했고 얼굴은 윤기가 났다. 누구도 날 환자로 여기는 사람이 없었다. 이렇게 우리부부는 암 선고를 받은 뒤 장장 십년을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며 제2의 인생을 살았다.

 

나는 가끔 생각을 해본다. 남편이 내 처지라면 난 어떻게 했을까? 말이 쉽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때론 침실에서 먼저 잠든 내가 좀만 인기척이 안 나도 뛰어들어와 숨소리확인하고 조금만 열이 나도 약방에 달려가서 약을 사오는 남편, 어디를 가도 내 뒤엔 항상 남편이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남편은 나의 수호신이 되어버렸다. 말 한마디가 천냥 무게 간다고 남편의 그 한마디 말은 나에게는 감로수였고 남편은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이었다. 지금도 그때 그 생각을 하면 병으로 잃은 것도 많았지만 참 얻은 것도 많았고 마음 한구석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흐뭇하다.

 

“난 당신을 마지막까지 책임지라고 이 세상에 온 사람이니 아무 생각 말고 우리 함께 잘 살아요.”

 

그때 그 모습은 사뭇 진지하였다. 난 하루하루가 즐거웠고 하고 싶은 일, 배우고 싶은 일이 넘 많아서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그러니 암이고 뭐고 별로 생각할 새 없다. 오늘도 이 글을 쓰면서 눈물을 흘리다 닦고 또 쓰고 지우고 하면서 암이란 특별한 손님이 나한테 가져다 준 모든 것에 오히려 고맙게 생각한다.

 

내가 아프고 나서 새로운 걸 더 많이 얻은 것 같아 고맙고 타인을 더 너그럽게 대할 수 있어 고맙고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안광이 넓어져서 고맙고 배우고 싶은 일 하고 싶은 일 많아서 고맙고 암튼 다 고맙다. 이 고마운 마음은 나의 남편이 말과 행동으로 가르쳐준 덕분이리라. 남편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을 글로 적고 보니 달고 싶은 제목 또한 너무 많다. 하지만 오늘은 내 인생의 최고의 선물인 남편이 나를 행복하게 해준 “말 한마디 천냥 무게”로 제목을 달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