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항일독립운동

독립운동가 이중업(李中業) 옥중서신 발견

한국국학진흥원 발견, 한지에 초서로 쓴 아들에게 편지 보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대리 김상준)은 최근, 1990년 당시 애족장에 서훈되었던 이중업(李中業: 1863~1921, 본관: 진성)의 옥중서신을 발견하였다. 이 편지는 가로 18cm, 세로 22cm의 한지에 초서로 쓰였다. 이중업은 애족장에 서훈되었으나 아직까지 수형기록이 발견되지 않아, 옥중생활의 면모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 편지는 진성이씨 향산고택에서 2002년과 2005년에 걸쳐 기탁된 4,660점의 자료 가운데 2천 3백여 점의 편지 가운데서 발견되었다.

 

이 편지에는 일제강점기 형무소에서 외부로 전송되는 편지를 사전 검열한 표식인 ‘검(檢)’자의 붉은 도장이 선명하게 찍혀있다. 편지의 발신이 아버지라고 되어있기 때문에 수신인은 당연히 아들이다. 이중업의 아들은 동흠(棟欽)과 종흠(棕欽) 두 형제이나 종흠이 양자를 갔기 때문에 수신인은 동흠으로 추정된다. 이 편지는 1920년 음력 9월 5일 출옥을 앞두고 8월 11일 보낸 것이다.

 

 

내용은 옥중에서 악성 종기에 시달리면서 학질까지 겹쳐 죽을 고생을 하고 있는 사정을 전하면서 9월 5일 출옥 이후의 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옥중에 사식을 넣어준 하영숙이란 인물에게 고마움을 전하도록 하고, 주변의 친척들은 방문하되 외부인은 일체 만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아버지 이만도(李晩燾)의 순국 정신을 이어받아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이중업은 1910년 일본이 강제병합을 단행한 직후 9월 17일(음력 8월 14일) 단식에 돌입하여 24일 만인 10월 10일 순국한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의 아들이다. 퇴계 이황의 12대손인 이중업은 서산 김흥락(金興洛)의 제자가 되어 퇴계 학맥을 계승하였다. 그는 아버지가 을미의병을 일으키자 당교격문(唐橋檄文)을 지어 안동ㆍ예안ㆍ상주ㆍ봉화 등지의 장터에 내다 붙이며, 경북 북부 지방 독립운동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그는 독립운동가 김대락(金大洛)의 여동생인 김락(金洛)과 결혼하였으며, 김락은 예안 3ㆍ1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갖은 고문을 당하다가 두 눈을 실명하였다. 이중업은 곽종석 등과 함께 파리장서를 작성하여 서명 운동을 일으켰으며, 중국 쑨원[孫文]과 우패이푸[吳佩孚]에게 독립청원서를 직접 전달하려고 시도했다. 또 당시의 나라안팎 정세를 정확히 탐문하고 전국을 돌며 유림들의 애국 충정심을 드높이는 한편 지역의 애국지사를 비밀리에 방문하여 광복운동을 의논하였다.

 

퇴계의 후손 집안, 3대에 걸쳐 8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하다

 

이중업은 퇴계종가에서 갈라져 나온 도산 하계마을 출신이다. 25명의 독립 운동가를 배출한 하계는 우리나라에서 마을 단위로는 가장 많은 독립 운동가가 나온 곳이다. 이중업의 아버지 이만도는 일본의 강제병합 직후에 자정순국하여 독립장에 추서되었고, 삼촌 이만규(李晩煃)는 이중업과 함께 파리장서에 참가하여 건국포장을 받았다. 그의 아내 김락은 3ㆍ1만세운동에 참가하고 두 아들의 옥바라지를 하여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그리고 아들 이동흠(李棟欽)과 이종흠(李棕欽) 형제도 독립운동에 헌신하여 국가유공자가 되었다. 3대에 걸쳐 나라가 어려울 때 분연히 일어나 호국을 실천한 가문이다.

 

 

<붙임 1> 이중업(李中業) 옥중편지 뒤침

 

月初葉書, 必已得見矣. 未知其間, 省體無病保命耶? 吾疽根向於初六日盡拔, 今用去惡生新之藥, 然衰枯之膚, 寒凉之節, 完合固不易. 且加以艸痁, 口味全失, 補元之物亦難得, 苦悶也. 比初頭可得快差, 少勿爲慮也. 汝歸日漸近, 吾亦不以汝爲唐耳. 遠近至情知舊, 來問病者多, 而砂兄瓢姪方留在, 日夕談討, 可以忘病也. 陰九月初五日, 果是出獄之日, 則其日穆令仁兄, 必持衿衣三件, 往待於河永淑家矣. 汝見永淑, 以私食差入之勤勞致謝. 從穆令去留一日上來, 而一從穆令指導, 雖一日之間, 切勿出門遊覽街上. 但往見李參奉鉉贊. 此家與穆令接隣, 而於吾爲族親, 則異於他人, 不可不見, 他人則不可見也. 五日出六日留七日登車, 則當直到安東矣. 吾以七日送人, 則待汝於尹基祚家也. 以此諒之也. 車費後當備送於穆令矣. 餘不多及.

陰八月十一日, 父. (수결業.)

 

瓢姪前付書, 果得見耶?

 

월초에 보낸 엽서는 이미 받아 보았을 것이다. 그간에 어른들 모시고 무병하게 지내는지 모르겠구나? 나의 악성 종기는 지난 달 초6일에 모두 짜내었다. 지금은 나쁜 것을 제거하고 새 살이 나는 약을 발랐으나 늙은 피부이고 서늘한 계절이라 완전히 봉합되기는 정말 쉽지 않구나. 게다가 학질이 더쳐서 입맛을 완전히 잃었고 원기를 보하는 음식 또한 얻기 어려우니 참으로 염려가 된다. 그래도 초하루에 비하면 쾌차할 수 있었던 것이니 조금도 걱정하지 말거라.

 

네가 돌아갈 날이 점차 가까워지니 나 또한 너 때문에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겠다. 원근의 친척과 친구들 가운데 와서 문병한 사람들은 많지만, 사촌 형과 박실 조카가 머무르며 날마다 독서 토론하면 병을 잊을 수 있을 텐데. 음력 9월 5일은 출옥하는 날이니 그날은 목령 형이 옷 3벌을 가지고 하영숙 집에 가서 기다릴 것이다.

 

네가 영숙을 보거든 나에게 차입을 부지런히 한 것에 대해 위로하고 감사 인사를 하거라. 목령을 따라가 하루를 머물렀다 올라오되, 한결같이 목령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비록 하루라도 절대 문밖을 나가서 길거리를 유람하지 말거라. 다만 이현찬 참봉을 찾아가서 뵈어라. 이 집과 목령의 집은 인접해 있고, 우리와는 친적이어서 다른 사람과는 다르니 보지 않을 수 없으나 다른 사람은 만나면 안 된다.

 

5일에 나가서 6일은 머물고 7일은 차를 타고 안동으로 바로 내려갈 것이다. 내가 7일에 사람을 보낼 테니 너는 윤경조 집에 가서 기다려라. 이것을 잘 헤아려야 한다. 차비는 후에 목금에게 준비해서 보내거라. 나머지는 많이 쓰지 못한다.

음력 8월 11일 부 업

 

추신 : 박실 조카 편에 보낸 지난 번 편지는 받아 보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