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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세종의 백성사랑 담긴 오목해시계는 지금 없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885]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목해시계 곧 앙부일구(仰釜日晷)는 세종 16년(1434)에 장영실, 이천, 김조 등이 만들었던 해시계로 시계판이 가마솥같이 오목한데다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오목해시계는 세종 때 처음 만든 이후 조선시대 말까지 계속해서 제작되었고 가장 많이 만들어진 대표적인 해시계입니다. 궁궐이나 관공서 그리고 때로는 양반집에서까지 시간을 측정하기 위해 정원에 설치해 놓았습니다. 대부분은 이런 거치식이었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의 보물 제852호 “휴대용 오목해시계”처럼 가지고 다니며 쓸 수 있는 것도 있었지요.

 

그런데 세종 때 처음 만들어진 오목해시계의 가장 큰 의의는 세종의 백성사랑입니다. 곧 거치형 오목해시계는 1미터 남짓한 3단의 돌계단 위에 시계를 설치해 계단을 오르면 키 작은 어린이도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전에 만든 오목해시계는 시각을 나타내는 12간지를 그림으로 새겨놓았지요. 이는 한자를 모르는 백성을 위해 특별히 배려한 것입니다. 곧 새벽 다섯 시에서 일곱 시까지를 가리키는 묘시(卯時)는 토끼 그림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세종은 이 해시계를 서울 혜정교와 종묘 남쪽거리에 설치해 많은 백성이 볼 수 있도록 마음을 썼습니다.

 

 

그러나 지금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과 여러 곳의 오목해시계는 토끼 그림도 돌계단도 없는 엉터리입니다. 그림을 제대로 새긴 것은 대전의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것이 유일한데 다만 이 시계도 받침돌은 잘못되었습니다. 세종16년 종묘에 설치했던 오목해시계는 임진왜란 때 사라지고 받침대만 남아 있었는데 1898년 전차궤도를 설치할 때 파묻혔다가 1930년에 발굴된 뒤 탑골공원에 옮겨 보존되어 오다가 2015년 종묘광장 정비를 하며 다시 이곳에 옮겨놓아 받침돌을 볼 수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