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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송나라 사람 서긍, 고려를 어떻게 보았나?

경기천년 기념 《900년 전 이방인의 코리아 방문기 – 고려도경》 특별전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경기도박물관은 오는 10월 21일까지 《900년 전 이방인의 코리아 방문기 – 고려도경(高麗圖經)》 특별전을 기획전시실에서 열고 있다. 1123년 중국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 1091~1153)이 사절단의 일원으로 고려를 방문하고 돌아가 황제에게 올린 출장보고서인 《고려도경》을 주제로 한 전시다. 이 책은 중국인의 시각으로 본 고려사회와 12세기 고려의 문물과 풍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으며, 원래는 글과 그림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편찬되고 얼마 되지 않아 원본이 유실되면서 그림은 없어지고 글만 남아 있다.

 

이번 전시는 경기 정명 1,000년과 고려 건국 1,100돌을 맞아 고려와 송나라의 교류를 주제로 한 전시라는데 의미가 있다. 중국인 서긍이 고려를 방문한 12세기는 ‘위기와 번영’이 공존한 시기이자 정치적으로 고려의 전환기였다. 당시 동아시아는 송나라와 고려, 북방의 거란족과 여진족 등이 서로의 상황에 따라 대립 또는 연합을 반복하며 복잡하고 팽팽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고려는 유연하고 실리적인 외교정책을 펴며 활발한 대외무역을 통해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고 능력 있는 장인을 발탁하여 독창적인 문화로 발전시켰다. 내부적으로는 각종 제도가 정비되고 경제력이 증가하면서 고려의 귀족문화는 절정에 이르렀다. 고려 전기부터 꾸준히 제작되어온 ‘대장경’, ‘불화’, ‘비색청자’, ‘금속공예’ 등 제작기술은 완숙기에 접어들었으며, 그 중심은 개경 주변의 ‘경기(京畿)’지역이었다.

 

 

《고려도경》이란?

 

《고려도경》은 1123년 중국 사신 서긍이 고려 사회를 직접 보고 쓴 당대의 기록된 1차 사료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을 줄여 부른 이름이다. 이 책의 초판본은 모두 40권으로 구성되었으며, 29개의 주제와 301개의 항목으로 나뉘어 있다.

 

본문은 권1~2에서 고려 이전과 이후의 역사를 설명하고, 권3~6까지 개경의 시설과 궁궐, 권7과 권16에서 관복과 관부, 권8에서 주요 인물을 다루었다. 이어서 권9~15까지는 의례와 의장 용품, 권17~18은 종교, 권19~23은 고려사회 여러 계층의 풍속, 권24~26은 사절단의 공식 행사, 권27~32는 사절단의 숙소와 생활용기, 권33~39는 사절단이 오간 바닷길과 고려의 배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고, 마지막으로 권40에서는 중국과 동일한 문물을 설명하였다.

 

여기에 서긍이 지은 서(序)와 조카 서천이 지은 발(跋), 장효백이 지은 행장(行狀) 등이 함께 실려 있다. 1124년 제작되어 한 부는 황제에게 바치고 다른 한 부는 자신이 보관하였다. 그러나 1127년 정강의 변으로 북송이 멸망하면서 원본은 없어지고, 10년 뒤 조카 서천이 그림은 없고 글 일부만 남은 《고려도경》을 발견하였다. 1167년(송 효종 건도3) 서천이 다시 판각하고 징강군[徵江郡-강소성 강음시]에 보관하여 이를 초판본 또는 징강본ㆍ건도본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초판본은 한동안 전해지지 않고 대신 필사본이 유행하였는데, 청나라 때 펴낸 《사고전서본(四庫全書本)》과 《지부족재총서본(知不足齋叢書本)》이 유명했지만 틀리거나 빠진 곳이 많다는 단점이 있었다. 다행히도 1925년 고궁박물원에서 궁중 장서를 정리하다가 그림이 없는 초판본이 다시 발견되었고, 우리나라에는 1970년 초판본의 영인본이 발행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부 ‘서긍의 고려도경’

1부에서는 송나라 사절단의 방문일정과 《고려도경》을 편찬한 과정을 영상과 패널로 설명하였다. 혼란했던 동아시아 국제정세에서 화친을 위해 고려를 방문했던 서긍 일행의 의도와 고려, 송, 거란, 여진의 외교관계를 엿볼 수 있다.

 

 

2부 ‘서울 개경(開京)’

2부에서는 서긍이 한 달간 개경에 체류하면서 참석한 공식행사와 보고 들은 내용을 소개하였다. 하지만 송의 사절단은 고려의 엄한 감시로 활동에 제약이 있었기 때문에 궁궐과 사절단이 묵었던 숙소(순천관)에서 있었던 일을 위주로 기록하였다.

 

 

3부 ‘고려인의 풍속’

3부는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고려의 귀족과 서민의 생활에 대해 다루었다. 서긍은 고려를 다른 이민족과는 달리 정신과 물질문화가 잘 정비된 사회로 보았지만, 이를 중국의 교화 덕분이라고 본 중화(中華)중심적 시각은 이 책의 약점으로 지적받고 있다. 전시에서는 중국문화[華風]와 토착문화[土風]를 융합하여 이루어 낸 고려문화의 개방성과 역동성을 소개하였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고려청자를 비롯하여 차ㆍ술ㆍ향약, 음식과 그릇, 불교, 장례, 도량형 등 다양한 유물을 전시하였다. 또한 흰색 베옷에 노랑치마를 입었던 고려시대 여성의 복식을 재현하고, 아이들이 직접 입어보는 체험코너도 마련하였다.

 

4부 ‘비색청자(翡色靑磁)와 세밀가귀(細密可貴)’

4부에서는 중국인도 부러워한 고려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천하제일로 불리던 고려의 비색청자와 세밀하고 귀했던 금속공예품 그리고 고려의 불교를 대표하는 초조대장경과 불화가 공개된다. ‘대방광불화엄경 제1권’(국보256호)과 ‘수월관음도’(보물1426호) 등 대표유물은 화려했던 고려문화의 절정기를 느끼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다만 수월관음도는 유물의 훼손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해 개막 후 2주 동안만 공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