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23 (일)

  • 맑음동두천 14.4℃
  • 구름조금강릉 18.6℃
  • 맑음서울 17.9℃
  • 맑음대전 17.1℃
  • 구름많음대구 18.2℃
  • 구름많음울산 19.8℃
  • 맑음광주 18.5℃
  • 구름많음부산 21.4℃
  • 구름조금고창 16.4℃
  • 흐림제주 22.4℃
  • 맑음강화 15.5℃
  • 맑음보은 13.1℃
  • 맑음금산 14.1℃
  • 구름많음강진군 16.3℃
  • 구름조금경주시 16.3℃
  • 구름많음거제 20.5℃
기상청 제공

’LA리틀도쿄(일본거리)‘는 석양빛 지듯 지는 느낌

[맛 있는 일본이야기 454]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LA 리틀도쿄(일본거리)는 우리의 숙소였던 에지먼트 200번지 근처에 있는 지하철을 타고 5개 역을 지나 엘에이시청 (CITY OF LOS ANGELES)역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으면 다다르는 곳에 있었다. 8월 9일(현지시각) 점심시간이 다 되어가는 시각에 리틀도쿄 거리에 도착했다. 말처럼 이곳이 일본인 거리라고 느껴질 만큼 일본어 간판이 즐비할 줄 알았는데 실상은 변변한 간판 하나 안보여 ‘혹시 잘 못 찾았나?’ 싶을 정도였다.

 

두리번거리다가 리틀도쿄 안내소를 발견하고 들어갔다. 미국에서 영어 실력이 딸리던 나에게 ‘일본어를 할 줄 아는’ 나로서는 마치 친정집에 온양 이것저것 상황을 물을 수 있어 좋았다.

 

“중심거리는 방금 들어오신 그 길입니다. 리틀도쿄는 3블록의 거리가 있어요. 첫 번째 거리가 가장 번화하고요. 두 번째 거리도 볼만합니다만 세 번째 거리는 안 가시는 게 좋습니다. 볼 것도 없고 약간 위험하거든요.” 일본인 안내원은 친절하게 리틀도쿄 지도를 꺼내어 볼만한 곳을 소개해주었다.

 

 

 

그러나 설명대로 나와 가장 번화하다는 거리를 걸어보았지만 이건 숫제 실망스러웠다. 라멘(라면)집 몇 개가 고작일 뿐이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라면이라도 먹을까했지만 좀 더 걸어보기로 하고 대로변을 걷다가 발견한 것은 망루처럼 보이는 일본인마을(日本人村) 간판이었다.

 

그러나 이곳도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신 일장기를 연상시키는 빨간 양산을 펼쳐놓은 것이 어쩐지 일본냄새를 느끼게 했을 뿐이었다. 일본인마을 안에는 일본 수퍼, 스시집, 옷집, 화장품집, 기념품집 정도가 번잡하지 않게 있을 뿐 점심시간인데도 그다지 사람도 많지 않았다. 식당을 찾다가 기념품집이 있어 들어가 보니 물건은 화장품이나 잘잘한 기념품등이 제법 있었지만 대부분 한국산과 중국산이 많았다.

 

날이 더워 손부채를 하나 사려고 찾으니 안보여서 계산대 아가씨에게 일본어로 물으니 “일본어를 모른다”고 한다. 일본인 2세나 3세 같아 보였는데 할 수 있는 언어는 영어뿐이란다. 단념하고 가게를 나와 스시집으로 갔다.

 

 

 

미국에 왔으니 순 미국식으로 먹어보자고 해서 전날 들어간 곳은 햄버거와 샌드위치를 파는 곳이었다. 메뉴판 가득히 적혀있는 메뉴는 종류가 많은 게 아니라 햄버거와 샌드위치에 집어 넣는 재료에 따라 달리 부르는 것 일뿐 종류는 딱 두 가지였다. 햄버거와 샌드위치. 나는 달걀 샌드위치를 시켰는데, 햄 샌드위치, 샐러드 샌드위치....순 이런 식으로 가짓수가 많아졌을 뿐으로 한국에서도 안 먹는 햄버거와 샌드위치는 끼니거리로 맞지 않는 일이었다.

 

해서 양인선 기자와 나는 리틀도쿄에서 일본식이라도 먹자고 들어간 곳이 ‘스시’ 집이었다. 다행히 이곳은 일본어가 통해 편했다. 주문한 식사를 거의 마칠 무렵, 종업원이 일본에서 왔냐고 묻기에 한국사람이라고 하니까 “아. 주방장님도 한국인이십니다”라고 답한다. 한국인이 일본 스시집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란다.

 

스시를 먹고 다시 나와 일본인마을 골목을 돌아보았지만 30분도 안돼 볼거리가 바닥날 정도로 빈약한 했다. 리틀도쿄라고 이름 붙이는 것이 어색할 정도였다. 물론 근처에는 일본 백화점이 두어 곳 있다고 하지만 백화점까지 돌아볼 마음은 없었다. 변변한 간판도(원래 미국이란 나라가 도배하듯 간판을 다는 곳이 아니긴 하지만) 없고, 눈을 사로잡는 볼거리도 없는 밋밋하기 짝이 없는 리틀도쿄를 빠져나오는데 미국여성 몇이서 ‘소원종이’를 적어 나무에 매다는 곳에 서서 깔깔대며 소원종이를 걸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