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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조선 왕실문화 격조를 잘 보여주는 <태조어진>

[얼레빗으로 빗는 편지 3895]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 1335-1408)의 어진은 나라를 세운 시조답게 왕실의 정통성을 보여줄 수 있도록 서울의 문소전(태조의 비 신의왕후 사당)을 비롯하여 경주, 개성, 평양, 전주, 영흥 등 여섯 곳에 진전(임금과 왕비의 초상화를 모시던 건물)을 두고 어진을 봉안하였지요. 따라서 수많은 태조어진이 그려졌는데 현재는 전주의 경기전 어진박물관에 있는 국보 제317호 <태조어진>만이 전해질 뿐입니다.

 

 

세로 218㎝, 가로 150㎝ 크기의 이 어진에는 청색 곤룡포를 입은 태조가 익선관을 쓰고 정면을 바라보면서 용상에 앉아 있습니다. 근엄한 얼굴은 위풍당당하기 까지 하여 군주로서의 위엄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절대군주 임금의 어진을 그리면서 그의 오른쪽 눈썹 위 이마에 지름 0.7cm 가량의 작은 혹을 그려넣었습니다. 임금의 초상화라도 예외 없이 있는 그대로를 그린다는 원칙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어진은 임금의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이 제일 바람직하다고 하지요. 하지만 《승정원일기》의 기록을 보면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은 그려내기가 가장 어렵다고 하는데 이 어진은 이를 훌륭히 소화해낸 작품이며, 조선 왕실문화의 격조를 잘 보여주는 초상화라는 평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