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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대사헌이 되어 마음을 다스리는 서거정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89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烏府淸班動百官(오부청반동백관) 사헌부 맑은 부서는 백관을 움직이는 자리인데

   不才承乏愧朝端(부재승핍괴조단) 무능한 내가 자리만 이어 장관된 게 부끄럽네

   何人自有風霜面(하인자유풍상면) 어떤 이는 서릿발 같은 위엄이 있었다는데

   今我元非鐵石肝(금아원비철석간) 지금 나는 원래 단단한 심장을 가지지 못했다네

   直劍不辭終百折(직검불사종백절) 곧은 칼날은 끝내 백 번 부러짐을 사양치 않지만

   曲藤何用要千蟠(곡등하용요천반) 굽은 넝쿨은 천 번이나 휘감겨 어디에 쓰겠는가?

   幸逢昭代無封事(행봉소대무봉사) 다행히 태평성대 만나서 누굴 탄핵할 일 없으니

   鳴鳳朝陽尙亦難(명봉조양상역난) 양지쪽에 봉황 우는 것 또한 어렵겠구려

 

이 시는 조선 전기의 문신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이 44살에 처음으로 대사헌이 되어 직책에 임하는 자세를 밝힌 <신배대사헌(新拜大司憲)>이라는 시입니다. 서거정은 시에서 사헌부는 모든 신하의 기강을 세우고 임금의 잘못을 간하는 자리인데, 굳고 단단한 마음을 가지지 못한 자신이 그 직책을 맡아서 잘 해낼지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은 곧은 칼처럼 엄정하게 일을 처리할 것이며, 굽은 넝쿨처럼 부정부패에 자신을 휘감기게 하지는 않겠다는 다짐을 하지요. 그러면서 성군이 다스리는 태평성대이기에 부패를 저지르는 신하를 고발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 노래하고 있습니다.

 

 

서거정은 여섯 임금을 섬겨 45년간 조정에 봉사하고, 홍문관과 예문관 대제학을 23년간이나 지낼 만큼 문장과 학식이 뛰어났으며, 23차례에 걸쳐 과거시험을 관장하여 많은 인재를 뽑았음은 물론 형조판서ㆍ한성부판윤ㆍ이조판서ㆍ대사헌을 지낸 인물입니다. 이 시대에 사는 우리가 사법부와 관련한 최근의 여럿 사건을 보면서 이런 시를 쓴 그를 그리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