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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2018년 9월의 독립운동가 최용덕 선생

무장독립투쟁을 견지한 군인, 대한민국 공군 창설의 주역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최용덕 (崔用德, 1898. 9. 19.~1969. 8. 15.) 선생을 2018년 9월의 독립운동가로 뽑았다고 밝혔다.

 

1898년 9월 19일 서울 성북동에서 태어난 선생은 경술국치 이후 중국 북경으로 건너가 새로운 사상을 익혔고, 1916년 원세개가 설립한 중국 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한 뒤 단기서 군의 제2사단에서 복무했다. 이러한 경험은 선생의 항일무장투쟁에 큰 자산이 된다.

 

 

1919년 중국에서 3ㆍ1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선생은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선생은 다수의 한인독립운동가들과 유학생들이 거주하던 중국 북경지역을 중심으로 대한독립청년단 단원 모집을 위해 활동한 것으로 확인된다. 또한 1921년 4월 이후 의열단에 참여하여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선생은 단장 김원봉과 함께 1922년 의열단의 국내거사를 준비하여 김상옥 의사의 조선총독부 폭탄 투척 의거를 지원했다. 이후 북경에서 민족유일당운동에 참여하여 1926월 10월 대독립당조직북경촉성회 결성에 이바지했다.

 

독립운동에 참여함과 동시에 선생은 중국 국민혁명군에서 복무했으며, 중화민국 공군 창설에 참여하여 중국 공군 대령으로 활약했다.

 

1940년 9월 임시정부의 국군인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비서처장에 임명되어 총사령 이청천 장군을 보좌했고, 1942년과 1943년 총사령부의 편제가 개편되면서 각각 총무처장과 참모처장에 임명되어 한국광복군의 운영과 실무를 총괄했다. 그리고 1943년 임시정부 국무위원회에 비행대 창설을 건의하여 공군설계위원회의 설계위원과 부주임을 맡아 임시정부의 공군 창설 준비를 추진했다.

 

해방 뒤에는 화북지역의 한교선무단의 군사조장으로 군무를 총괄하고, 북평잠편지대의 지대장으로 활동했으며, 1946년 7월 귀국하여 줄곧 군인으로서 공군 창설에 노력했다. 대한민국 정부 초대 국방부 차관, 공군사관학교 교장, 제2대 공군참모총장을 지내고 1956년 공군 중장으로 예편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최용덕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