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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 그리고 행사

<만인의 청원, 만인소> 아ㆍ태기록유산에서 세계기록유산으로

‘유네스코 아시아ㆍ태평양지역 기록유산 등재기념’ 국제학술대회 개최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안동시(시장 권영세)와 한국국학진흥원(원장대행 김상준)은 만인소의 유네스코ㆍ아시아태평양지역 기록유산 등재를 기념하여 9월 13일(목) 오전 11시부터 한국국학진흥원에서 ‘19세기 청원운동의 국제적 비교’라는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연다. 이번 국제학술대회는 여성들이 세계최초로 투표권을 갖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1893년 여성 참정권 탄원서>(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와 <만인의 청원, 만인소>(2018년 유네스코 아ㆍ태기록유산으로 등재)를 비교하여, 19세기 청원 운동이 갖는 세계사적 의의와 <만인소>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가능성을 논의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조선 공론 정치의 원형, 만인소

 

만인소는 조선시대 만여 명에 달하는 재야 유교 지식인들이 연명해서 임금에게 올린 청원서다. 만여 명 이상이 연명하는 과정에서 공론을 모으고 자발적인 참여 의사들을 확인하며, 이를 청원서로 만드는 대규모의 ‘운동’이 전개된다. 1792년(정조 16)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억울하게 죽은 사도세자를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청원을 시작으로, 1800년 이후로는 각기 다른 사안으로 여섯 번의 청원이 더 진행되어, 모두 일곱 번의 만인소 운동이 전개되었다.

 

이 가운데 만인소의 원본이 남아 있는 것은 1855년(철종 6) 사도세자를 임금으로 추존해 달라는 <사도세자 추존 만인소>와 1884년(고종 21) 당시 복제 개혁에 반대하는 <복제개혁 반대 만인소> 2점이다. 이 두 종의 만인소는 각각 도산서원과 옥산서원에서 소장하고 있다가, 현재는 한국국학진흥원과 옥산서원에서 각각 보존하고 있다.

 

만인소는 유네스코 아시아ㆍ태평양지역 기록유산 총회에서 ‘만여 명의 개인이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유교적 윤리관을 국가에 실천적으로 적용하고자 한 민주주의의 초기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되었다. 재야 유교 지식인들이 자발적 참여를 통해 형성된 공론을 나라에 적용시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청원했던 결과물이라는 점이 등재를 결정했던 주된 이유였다. 권력을 갖지 못한 재야 지식인 개개인이 공론을 형성하여 그 공론의 이름으로 청원했던 유학자들의 노력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세계 최초로 여성 투표권 획득 – 뉴질랜드 여성참정권 탄원

 

이번 학술대회에는 만인소 뿐 아니라 뉴질랜드 여성들의 참정권 운동에 대해서도 소개된다. 1893년 뉴질랜드는 세계 최초로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했다. 이는 뉴질랜드의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투표권을 획득하기 위한 서명운동을 전개함으로써 가능했다. 뉴질랜드의 여성들은 1885년부터 투표권을 획득하기 위한 운동에 돌입했으며, 1887년에서 1893년 사이 5번에 걸쳐 청원운동을 조직했다.

 

이 과정에서 25,519명이 서명한 청원서가 1893년 9월 뉴질랜드 의회에 제출되어 가결됨에 따라 비로소 투표권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1893년 제출된 여성참정권 탄원서는 이 사건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1893년 여성 참정권 탄원서>라는 이름으로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만인소 운동, 세계기록유산으로 나가는 길을 모색하다.

 

 

본 학술대회는 오전 기조강연과 오후 기조발표를 비롯한 여섯 개의 발표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발표는 19세기 다른 문화권에서 발생했던 청원운동의 양태와 그 의미를 살펴봄으로써, 그것이 세계사에 미친 영향에 대해 고민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시대 언론을 통한 정치 참여의 일환이었던 만인소 운동과 1893년 뉴질랜드의 여성 참정권 운동을 견주어봄으로써, 만인소 운동이 갖는 세계사적 가치를 확인하고 이를 통해 아시아ㆍ태평양 지역 기록유산을 넘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 작업이 될 것이다.

 

아시아ㆍ태평양기록유산위원회(MOWCAP) 부의장 다이엔 맥카스킬(Dianne Macaskill)은 1893년 뉴질랜드의 여성참정권 운동과 조선의 만인소 운동을 비교하여 만인소의 UNESCO 세계기록유산으로서의 가치를 탐색하였다. 맥카스킬은 만인소 운동이 “유교 이념이 명하는 윤리적 정치의 실현을 위해 주요 나라 개혁에 영향을 주려는 집단적 행동”으로 뉴질랜드의 여성참정권 운동과 거의 같은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또한 만인소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조선이 여론의 민주적 표현을 통한 국민의 정치참여에 관용적이었다는 사실과, 그것이 이후 한국의 정치 발전 및 국제적 관계를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오타고 대학의 바바라 브룩스 교수는 뉴질랜드 여성참정권운동이 “여성이 더 이상 성적인 존재로만 이해되지 않을 가능성을 제공”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여성들이 투표권을 얻는 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뉴질랜드를 넘어서 다른 곳의 여성참정권 운동의 모범이 되었다는 점을 중요하게 평가했다.

 

뉴질랜드 국가기록원의 카트리나 타마이라(Katrina Tamaira) 기록연구사는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 여성들의 활동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전개하였다. 그녀는 1893년 청원서에서 뉴질랜드 여성참정권 운동에서 마오리족 여성들의 공헌은 매우 컸으며, 일부 마오리족 여성들에게 참정권은 “그들의 잃어버린 정치적 권력을 되찾기 위한 발걸음”이기도 했다고 평가하였다.

 

한국의 학자들은 <만인소>가 가지고 있는 기록유산으로서의 가치와 그 의미를 규명하였다. 순천대 이욱 교수는 1792년, 1855년 사도세자 관련 만인소가 가지는 정치적 의미를 통해, 영남을 중심으로 한 만인소 운동의 전개 과정과 그 내용을 검토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권오영 교수는 1884년 복제개혁관련 만인소를 중심으로 그 이전부터 1884년 복제개혁반대만인소에 이르는 척사위정운동의 양태와 이를 중심에 둔 청원 운동의 내용들을 검토하였다.

 

한국국학진흥원 이상호 책임연구위원은 만인소 운동이 퇴계학을 기반으로 한 영남지역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만인소 운동이 퇴계학에 바탕한 실천 철학의 한 양태였음을 밝힌다.

 

이번 학술대회를 계기로 금년 5월 아시아ㆍ태평양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만인소의 세계사적 가치를 다른 나라의 사례와 견주어 검토하고, 앞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추진을 모색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세계기록유산제도는 그 기록이 세계사적으로 중요하며, 인류가 지속적으로 보존해야할 가치를 지닌 기록문화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한국국학진흥원 김상준 원장대행은 “만인소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알림으로써, 아시아아시아ㆍ태평양기록유산위원회태평양 지역 기록유산을 넘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