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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편지

박재혁 의사, 폭탄던져 경찰서장 하시모토 처단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905]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920년 오늘은 박재혁(朴載赫, 1895.5.17. ~ 1921.5.11.) 의사가 부산경찰서에서 거사를 일으킨 날입니다. 박 의사는 중국 고서상(古書商)으로 위장하고, 폭탄을 고서에 숨긴 채 경찰서장실에 들어갔습니다. 선생은 중국 고서에 관심이 많았던 경찰서장에게 고서를 풀어놓는 척 하면서 폭탄을 던졌으며, 이에 경찰서장 하시모도(橋本秀平)는 죽고 자신도 중상을 입었습니다.

 

 

박재혁 의사는 이미 나이 열여덟에 <구세단(救世團)>을 조직하여 항일 잡지를 펴내다 체포돼 모진 고문을 당했던 적이 있었지요. 박 의사는 부산지방법원에서 1920년 11월 2일 사형 언도를 받고, 1921년 2월 14일에는 대구복심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지요. 그러나 다시 상소한 경성고등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습니다. 사형이 언도되자 박 의사의 어머니와 누이동생뿐만 아니라 방청객 모두 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박 의사의 부산경찰서장 폭탄 투척의거 두 달 뒤에는 의열단원 최수봉이 밀양경찰서에 , 1921년 9월에는 의열단원 김익상이 총독부에 폭탄을 던졌으며, 1922년 3월에는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를 처단하기 위한 거사가 결행되기도 하였습니다. 박 의사는 왜놈 손에 사형 당하기 싫어 단식을 했고, 결국 5월 11일, 순국하고 말았지요. 정부는 박 의사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