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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만세운동 100돌에 만나는 여성독립운동가 100인

독립유공자 6명을 낸 배화여고, 독립운동의 산실

함께 만세운동을 한 18명은 왜 독립유공자가 되지 못하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이번 제73돌 광복절을 맞아 98년 전 배화여학교(현, 배화여자고등학교)에 다니던 이 학교 6명의 소녀들이 독립유공자로 추서되어 기쁩니다. 배화여학교의 독립운동은 3.1만세운동 1주년 때인 1920년 3월 1일 일어났습니다. 당시 배화여학교에는 독립정신이 투철하신 남궁 억(1863-1939, 1977, 독립장 추서), 김응집(1897-1937, 2008, 건국포장 추서), 차미리사(1880-1955, 2002, 애족장 추서)와 같은 민족의식이 강한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이는 배화여자고등학교 오세훈 교장의 이야기다. 오세훈 교장은 지난 9월 12일 수요일 낮 3시, 미리 약속하고 찾아간 기자를 만세운동 자료실로 안내했다. 배화여고 만세운동 자료실에는 벽면 가득히 만세운동 당시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유리 진열대 속에는 졸업장 등 당시 학생들의 자료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번 8.15 광복절에 국가보훈처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은 6명의 배화여학교 출신의 여성독립운동가는 김경화(金敬和), 박양순(朴良順), 성혜자(成惠子), 소은명(邵恩明), 안옥자(安玉子), 안희경(安喜敬) 지사다.

 

배화여학교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일이 아니라 1주년이 되는 1920년 3월 1일에 일어났다. 그렇다고 1919년 3월 1일에 침묵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거국적인 거사날인 3월 1일을 이틀 앞둔 2월 27일 밤, 기숙사생들이 잠든 사이 배화학당의 학생 대표인 김정애, 김해라, 최은심 등은 식당에 모여 거사날에 전교생을 동원할 방법을 모의했다. 이에 앞서 김정애는 당시 여학생의 연락본부인 이화학당 지하실에서 등사한 독립선언문을 두 번에 나누어 가져와 배화학당에 몰래 숨겨두었다. 독립선언문의 일부는 배화학당에서 쓸 것이고 일부는 거사날 시내 시위에서 쓰려고 준비 해놓은 것이었다.

 

 

이들은 2월 27일과 28일 밤, 기숙사 뒤편 철망을 넘어 시내 상가에 선언문을 미리 배포해 놓고 3월 1일을 기다렸다. 그러나 거사날인 3월 1일에는 정작 만세운동에 참여할 수 없었다. 당시 스미스 교장선생은 만세운동으로 학생들이 잡혀갈 것을 우려해 학생들이 모이지 못하게 조치를 취했다. 거기에다가 이날 오후에 일본 헌병이 들이닥쳐 만세시위 사전 주모학생들을 찾기 시작하는 바람에 배화여학교는 1919년 3.1만세운동에 참여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후 곧바로 3월 10일 휴교령이 내려지는 바람에 학생들이 뿔뿔이 흩어져야했다.

 

 

이후 수업이 재개된 학교에서 남궁 억, 김응집, 차미리사와 같은 민족의식이 투철한 교사들은 상해임시정부의 소식 등을 전하며 “썩은 줄과 같은 일본 정책을 끊고 일어서라.”는 격문을 지어 배화학당의 학생들에게 민족정신을 키워주는 교육에 전념하였다. 그 결과 1920년 3월 1일 배화학당의 학생들이 ‘3.1운동 1주년 만세운동’의 불을 지필 수 있게 된 것이다.

 

1920년 3월 1일 새벽, 배화학당의 여학생 40명은 학교 뒷산인 필운대로 올라가 대한독립만세를 목청껏 불렀다. 새벽을 깨우는 이들의 함성은 하늘을 찌를 듯 우렁찼다. 그러나 이들의 시위 소식을 들은 종로경찰서 소속 헌병들이 득달같이 달려와 어린 여학생들을 줄줄이 잡아갔다. 이날의 주동자는 고등과 김경화와 보통과 이수희 학생이다. 이들과 함께 만세운동에 참가했다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한 학생들은 모두 24명으로 그 이름은 다음과 같다.

 

이수희, 김경화 :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

손영희, 한수자, 이신천, 안희경, 안옥자, 윤경옥, 박하경, 문상옥, 김성재, 김의순, 이용녀, 소은숙, 박심삼, 지은원, 소은경(국가보훈처 기록에는 소은명), 최난시, 박양순, 박경자, 성혜자, 왕종순, 이남규, 김마리아 :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배화백년사, 177쪽 참조, 밑줄은 기자가 그었으며 이 분들만 이번 8.15 광복절에 서훈(대통령 표창) 받음-

 

 

위 명단에서 보듯이 1920년 3월 1일 배화학당의 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룬 이들은 모두 24명이지만 이번 광복절에 서훈을 받은 이들은 김경화, 안희경, 안옥자, 소은명(배화백년사 기록에는 소은경) 박양순, 성혜자 등 6명뿐이다. 같은 옥고를 치르고도 이번 서훈자에서 빠진 이유는 무엇인지 국가보훈처의 설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민족의식이 투철한 교사들과 그 아래서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배화여학교 여학생들의 처절한 절규는 자료실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아쉬운 것은 교실 하나를 자료실로 쓰고 있어 좀 더 생생한 자료를 보여줄 수 있는 시설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나마도 이 교실은 “2009년 졸업생 박희정의 아버님(박상윤)께서 꾸며주셨습니다. 2009년 11월 15일” 이라고 쓴 표지로 보아 개인이 사비로 꾸며준 것 같았다. 올해 6명의 여성독립운동가 서훈을 받은 학교이니 만치 자료실을 좀 더 알차게 꾸몄으면 좋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명실 공히 배화학당이야말로 여성독립운동가의 산실이 아닌가?

 

배화여고 자료실을 둘러보면서 문득 광복 68주년(2012)에 7명의 여성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목포정명여학교(현 정명여자중학교)의 번듯한 독립자료관이 떠올랐다. 그간 배화여학교 출신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이 사회의 조명에서 비껴나 있어서 이들을 기리는 시설을 제대로 마련할 수 없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배화학당이 이제는 독립운동의 산실로 자리매김 되었으니 제대로 된 배화의 독립자료관이 들어섰으면 하는 바람을 개인적으로 해보았다.

 

 

 

배화학당의 배화(培花)란 꽃을 배양한다는 뜻으로 조선의 여성을 신앙과 교육으로 아름답게 배양하여 꽃 피워내는 배움의 터전이란 뜻을 품고 있다. 올해로 개교 120주년을 맞이하는 배화여자고등학교는 1898년 10월 2일, 미국 남감리교 여선교사 조세핀 필 캠벨(Mrs. Josephine Eaton Peel Campbell) 여사가 당시 고간동(현 내자동)에서 여학생 2명과 남학생 3명으로 시작한 학교다. 현재는 839명의 재학생들이 과거 서울의 명소인 필운대(서울시문화재자료 제9호, 백사 이항복 집터)를 배경으로 풍광이 아름다운 학교에서 다수의 여성독립운동가를 배출한 학교의 자존심을 걸고 열심히 학업을 닦고 있다.

 

배화여자고등학교는 개교 120주년의 전통을 간직한 학교답게 교내에는 현재 교무실 등으로 쓰고 있는 캠벨기념관(1926), 생활관으로 쓰고 있는 초기 미국선교사들의 주택으로 사용했던(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93호) 건물 등 오래된 건축물들이 남아 있어 역사의 향기를 느끼게 한다.

 

 

교정을 둘러보면서 98년 전 1920년 3월 1일,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24명(이 가운데 6명만 이번 광복절에 서훈 받음)의 배화학당 여전사들의 함성을 떠올려보았다. 3.1만세운동 100돌을 1년 앞둔 배화학당이 ‘서울 여성독립운동가의 산실’ 임을 증명하는 학교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면서 교정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