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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경주에 있던 태조 어진 자취, 집경전구기도

수장고 속 왕실유물 이야기 9월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전라북도 전주에 가면 태조의 어진을 모시고 있는 “경기전(慶基殿)”이라는 이름의 진전을 볼 수 있습니다. 조선 초기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태조의 어진은 전주 외에 경주, 개성, 평양, 영흥 등에도 모셔져 있었습니다. 이 장소들은 옛 도읍이었거나 태조의 탄생지, 본향(本鄕)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경주에 있던 진전의 이름은 “집경전”이었습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유물은 바로 이 경주 집경전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집경전구기도(集慶殿舊基圖)》는 집경전의 옛터[舊基]를 그린 그림이라는 뜻입니다. 옛터라고 한 이유는 현재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집경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습니다. 그 안에 모셔져 있던 태조 어진은 다행히 피해를 면할 수 있었고 경상도 각지로 옮겨지며 지켜졌습니다. 이후 강릉에 집경전을 짓고 봉안을 했지만, 이마저도 1631년 화재로 인해 어진과 전각이 모두 불에 탔습니다. 그 뒤로 경주의 집경전은 다시 세워지지 못했습니다. 다만 1798년(정조 22)에 집경전이 있었던 곳임을 알려주는 비석이 세워졌습니다.

 

 

 

 

《집경전구기도》는 글과 그림이 함께 묶여있는 첩(帖)입니다. 첩을 펼쳐보면 먼저 집경전의 내력 등에 대한 글이 나오고 접힌 면을 크게 펼칠 수 있는 두 장의 그림이 이어집니다.

 

두 그림은 <경주읍내전도>와 <집경전구기도>입니다. <경주읍내전도>는 첨성대와 신라 왕릉 따위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한눈에 경주임을 알아볼 수 있는 재미있는 그림입니다. 그림의 위쪽에 사각형으로 구획된 곳이 경주읍성이고, 읍성 내부의 오른쪽 위에 자리잡은 것이 바로 집경전 옛터입니다. 뒤이어 수록된 <집경전구기도>는 바로 이 부분을 확대해서 그린 것입니다.

 

확대된 <집경전구기도>는 신성한 구역임을 나타내는 홍살문부터 시작을 합니다. 홍살문 옆에 놓인 자그마한 비석은 아마도 하마비(下馬碑)일 것입니다. 홍살문을 거쳐 안으로 들어가면 담장으로 구획된 두 개의 공간이 보이는데 앞쪽에 있는 것이 정조 연간에 세워졌다는 비각(碑閣, 비석을 보호하는 전각)이고 뒤쪽 공간이 집경전의 옛터입니다.

 

 

집경전 터를 보면 여러 개의 둥그런 돌들이 자리를 잡고 있고 그 사이에 “集慶殿舊基(집경전구기)”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 돌들은 집경전의 주춧돌이겠지요. 임진왜란 전까지 바로 이 주춧돌 위로 전각이 세워져 있었을 것이고 그 안에 태조의 어진을 모셨던 것입니다.

 

집경전 터 바로 뒤쪽으로는 낯선 형태의 구조물이 있습니다. 마치 터널처럼 보이기도 하는 석조물입니다. 크기가 함께 표시되어 있는데 길이[長]가 21척(尺)이고, 높이[高]가 7척입니다. 1척이 약 30cm이므로 6m가 넘는 길이에 높이도 2m 이상입니다. 도대체 어떤 용도의 구조물이었을까요? 집경전과 같은 구역 안에 있는 것으로 보아 집경전과 관계된 시설이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와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고 정확한 용도 역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집경전 옛터는 현재 경주시 북부동 옛 경주여자중학교 자리(현 경주평생학습가족관)입니다. 그 자리에 여러 건물이 들어서면서 본래의 모습을 온전히 그려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행히도 <집경전구기도>에서 보이는 용도 불명의 석조물과 함께 비석, 하마비, 계단돌 등이 남아있어 이곳이 집경전의 옛터임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