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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밟는 소리를 느낄 수 없는 시대

[정운복의 아침시평 32]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메밀꽃 필무렵의 작가 이효석은 "낙엽을 태우면서"라는 짧은 수필을 남깁니다.

그 수필의 한 대목을 싣습니다.

 

   “나는 그 냄새를 한없이 사랑하게면서 즐거운 생활감에 잠겨서는,

    새삼스럽게 생활의 제목을 진귀한 것으로 머릿속에 띄운다.

    음영과 윤택과 색채가 빈곤해지고, 초록이 전혀 그 자취를 감추어 버린,

    꿈을 잃은 허전한 뜰 한 복판에 서서,

    꿈의 껍질인 낙엽을 태우면서 오로지 생활의 상념에 잠기는 것이다.

    가난한 벌거숭이의 뜰은 벌써 꿈을 꾸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탓일까?

    화려한 초록의 기억은 참으로 멀리 까마득하게 사라져 버렸다.

    벌써 추억에 잠기고 감상에 젖어서는 안 된다.“

 

가을입니다.

가을엔 화려한 단풍이 사위어가면 마른 낙엽이 남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햇빛 공작소의 임무를 뒤로하고

정든 가지를 떠나 쓸쓸히 포도 위를 굴러야 하는 것은 낙엽의 운명입니다.

 

 

시인 한용운은 "알 수 없어요."라는 시에서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라는 표현을 남깁니다.

타버린다는 것은 소멸을 의미하지요.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 반응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그것이 없어지지 아니하고 광명을 밝힐 기름이 된다고 합니다. 오직 시적 언어로만 이해 가능한 말이긴 하지만 이는 죽었다고 생각한 식물이 새봄에 다시 생명의 꽃을 피운다는 존재의 신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윤회사상일수도...)

 

그래서 낙엽은 끝이 아니고 시작일 수 있으며

소멸이 아니고 생명의 연장일 수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싸리비로 낙엽을 쓸어 모아 마당 한 귀퉁이에 모아놓고 태우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그 매캐하고 알싸한 냄새가 코끝을 스치면 자연을, 생명을 호흡하는 것 같아 참으로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요즘도 낙엽은 무수히 존재합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봐도 낙엽을 태우는 풍경은 볼 수 가 없네요. 떨어지자마자 치워져 모두 자루에 담겨서 퇴비장으로 직행하기 때문에 낙엽 밟는 소리를 느낄 시간적 여유조차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네 삶에서

낙엽을 태울 공간도, 사람도, 여유도 시절에 빼앗겨

추억마저 강탈당한 느낌이 드는 것은 단지 저만의 생각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