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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장군님은 유정하오나, 청룡도는 무정지물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390]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난주에는 판소리 적벽가 외에도 경기 좌창의 하나인 적벽가와 서도소리의 적벽가도 있다는 이야기, 판소리 적벽가는 중국 위의 조조, 한의 유비, 오의 손권이 서로 싸우는 이야기로 삼고초려대목, 장판교 싸움, 군사설움타령, 적벽강 싸움, 화용도 대목 등인데, 삼고초려는 장수들의 위엄이 우조로 그려져 있어서 담담하고, 싸우는 대목에서는 물고 물리는 긴박한 광경이 빠른 장단으로 전개되어 긴장감을 준다는 이야기, 그리고 군사설움대목이나 화용도 대목에서는 계면조의 애처러운 소리와 함께 재담소리가 들어있어 부분적으로 웃음을 제공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를 하였다.

 

또 판소리 적벽가의 명창으로는 순조 때의 송흥록과 모흥갑, 방만춘, 주덕기, 박만순을 위시하여 많은 명창들이 이름을 남기었고 경기잡가 적벽가는 판소리 적벽가의 끝부분, 즉 화용도 대목의 일부분 사설을 도드리장단에 얹어서 부르고 있다는 이야기, 적벽강 싸움에서 패한 조조가 쫒기는 몸이 되어 화용도에 들어섰는데, 이들의 앞을 관우가 가로 막으며, 목숨을 구걸하는 조조와 칼을 받으라고 명하는 관우의 설전이 재미있게 전개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막다른 골목에서 조우하게 된 조조와 관우의 화용도 이야기를 한다. 화용도(華容道)의 화용이란 중국의 현(縣)이름으로 현재는 호북성 감리현 서북쪽에 있는 지역의 이름이다. 그러므로 화용도라고 하면 화용현에 있는 좁은 길이란 뜻이다. 이를 화룡도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용(龍)이 아니라 용(容)이기에 이렇게 부르는 것은 맞지 않다.

 

 

조조의 패잔병과 관우가 이끄는 오백도부수가 만나게 된 화용도 좁은 길은 아예 싸움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조조의 부하들이 청하기를 “전후좌우가 복병이고, 진퇴유곡이니 전일 승상(조조)께서 관공에게 깊은 은혜 있었으니 극진히 빌어 보라.”는 권고였다.

 

허는 수 없이 조조가 투구를 벗어 땅에 놓고, 갑옷은 벗어서 말 위에 얹고, 장검은 빼어서 땅에 찌르고, 대머리 고초상토(머리가 다 빠져 상투 같지 않은 상투) 가는 목을 움츠리고 간교한 웃음으로 히히하하하 복배하며 들어가 “장군 본지 적연터니(오랬더니) 기체 무량하시니까?”라고 인사를 하자, 관공은 대꾸도 없이 “이 놈, 목 늘여 칼 받으라.”고 호통을 치는 것이다.

 

조조가 또 다시 옛일을 상기시키며 살려달라고 애걸하면 관공은 “너는 한(漢)나라 적신이고, 나는 한나라 의장이라. 너를 보고 놓겠는가? 목 늘여 칼 받으라.”고 호통을 친다. 이와 같이 적벽가 마지막 대목은 화용도 좁은 길에서 조우하게 된 조조와 관우의 “살려 달라.” “칼 받으라.의 싸움이 재미있게 펼쳐지는 대목이다. 이 대목을 정권진 명창이 부르는 적벽가의 사설로 감상해 보기로 한다.

 

 

<아니리> 조조 깜짝 놀래 목을 딱 움치니, 관공이 비긋이 웃으시며

“쪽박을 쓰고 벼락을 피할망정, 늬 옷깃으로 내 칼을 어이 바우랴.(피하랴)”

“아이고 장군님, 초행노숙(산이나 들에서 하는 노숙) 허옵다가 초풍헐까(깜짝 놀랄까) 조섭(조심)하오니 관공은 가까이 서지 마옵소서.”

“늬 날과 유정(有情)타 하면서 어찌 가까이 못 서게 허느냐?”

“장군님은 유정하오나 청룡도는 무정지물이니 고의(古誼, 옛날의 바른 도리)를 베일까 염려로소이다.”

 

<중몰이>“ 영풍하신 관공님은 대의로서 살려주옵소서. 천하(天下)득실(得失)은 재천(在天)이요, 조조 생사는 재장군이오니 별반 통촉을 허옵소서. 쓰신 투구, 입으신 갑옷, 청룡도와 타신 말은 소장이 드렸난듸, 그 칼로 이 몸 죽기는 그 아니 원통허오? 제발 덕분의 살려주옵소서.”

관공이 또 호의로 답하시되,

“내가 너를 잡는다고 군령(軍令)다짐 허였으니, 너 놓고 나 죽기는 그 아니 절박허냐?”

조조 다시 복지하여 “아이고 장군님, 장군님, 장군님, 장군님, 장군님! 유현주와 공명선생은 장군님을 믿삽기를 오른팔로 여기는 듸, 초개(草芥)같은 이 몸 조조 아니 잡어 바치기로 의율시행을 허오리까? 옛날 유공지사 자탁유자, 두 사람을 생각허여 제발 덕분에 살려 주옵소서”

 

 

(이 대목에서 유공과 자탁을 끌어드린 것은 정(鄭)나라의 자탁이란 사람이 위나라에 쳐들어갔다가 유공에게 쫓기게 되었는데, 자탁은 학질에 걸려 활을 못 쏘게 되었다. 그런데 유공에게 활쏘기를 가르쳐 준 스승이 윤공이고, 윤공은 또한 자탁으로부터 배웠기 때문에 유공에게 있어 자탁은 스승의 스승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적을 막아 내라는 임금의 명령은 어길 수가 없고 해서 활촉을 뺀 화살 몇 개를 마차에 쏘고 돌아갔다는 옛 이야기를 조조가 끌어들이는 것이다.)

 

수하 장졸이 모두 다 꿇어 엎뎌 “장군님 덕행으로 우리 승상 살려 주시면, 여산여해 깊은 은혜 천추만세를 허오리다.” 수만 장졸들이 모두 다 꿇어 엎져 앙천(仰天, 하늘 우러러) 통곡을 허는구나.

 

<아니리> 관공의 어진 마음 조조를 쾌히 놓아 주고 “중군은 하산하라” 회마하여 돌아와 공명께 복지주 왈, “ 용렬한 관모는 조조를 놓았사오니 의율(법에 따라) 시행하옵소서.” 공명이 내려와 손을 잡고 회답하되, “조조는 죽일 사람이 아닌 고로 장군을 보냈으니 그 일을 뉘 알리요.”

 

세인이 노래하되,

<엇중몰이> 제갈 양은 칠종칠금하고, 연인 장 익덕은 의석 엄 안 하고, 관공은 화용도 좁은 길에 조맹덕을 살으란 말가. 천고의 늠름한 대장군은 한수정후 관공이라, 더질더질.

 

(더질더질은 판소리를 맺는말로 그 의미는 분명치 않다. “장익덕은 의석 엄안 하고”의 의미는 엄안은 촉나라 장수인데, 장비가 파군 태수인 엄안을 삼로 잡은 뒤에 ‘항복하지 않고 감히 맞서 싸웠다.’고 비웃자, 엄안이 이 고을에는 머리를 잘리는 장수는 있어도 항복하는 장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해, 장비는 그의 충의를 높이 사서 그를 놓아주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