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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편지

안중근 의사의 약손가락 잘린 손도장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935]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 10월 26일은 1909년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정거장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날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사살한 뒤 “대한만세”를 외치고 체포되었는데 안 의사는 이토가 대한의 독립주권을 침탈한 원흉이며 동양평화의 교란자이므로 대한의용군사령의 자격으로 총살했다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옥중에서 한ㆍ중ㆍ일 3국의 관계를 ‘대등한 국가 관계’로 보면서, 이웃 국가에 대한 침략과 영토 확장을 비판하고 평화적 공존을 주장한 <동양평화론〉을 집필했지요.

 

그런데 안중근 의사가 남긴 글씨들을 보면 왼손 약손가락이 잘린 손도장이 찍혀 있습니다. 이는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을 지낸 최재형 선생 밑에서 지원과 훈련을 받은 안중근 의사와 엄인섭, 김태훈, 우덕순 등 11명이 1909년 3월초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를 결성하고 왼손 넷째 손가락(무명지) 첫 관절을 잘라, 혈서로 '大韓獨立(대한독립)'이라 쓰며, 독립운동에의 헌신을 다짐한 결과입니다.

 

 

이 단지동맹(斷指同盟)은 조선 침략의 원인을 제공한 원흉으로 지목되던 이토 히로부미와 이완용에 대한 암살계획을 세우고, 3년 이내에 이를 성사시키지 못하면 자살로써 국민에게 속죄하겠다며 왼손 네번째 손가락 한 마디를 잘라 피로써 항일투쟁의 의지를 다진 것입니다. 이후 이 단지동맹은 애국청년 사이에 유행했는데 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높았던가를 명백하게 보여주며, 안중근 의사의 손도장은 안 의사의 독립투쟁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증거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