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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우아하고, 멋스러운, 당의(唐衣)

[큐레이터 추천유물 65]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여름에는 당의 아래로 슬쩍 비치는 저고리와 치마의 사각거림, 겨울에는 초록 공단에 화려한 금박무늬가 돋보입니다. 걸을 때마다 살짝 흔들리는 긴 옷자락과 유려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끝자락은 우아하고 멋스러운 당의(唐衣)의 아름다움을 보여 줍니다.

 

당의는 조선시대 여성 예복의 하나로 왕실에서는 크고 작은 예식과 문안례의 소례복(小禮服)으로 입었을 뿐만 아니라, 재료와 장식, 구성에 차이를 두어 상궁과 내인(內人)들도 예복으로 착용했던 옷입니다. 또 반가(班家)의 부인들은 입궐할 때 예복으로, 일반인들은 혼례복으로 입기도 하였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흥미로운 당의 두 벌이 있습니다.

 

당의에는 녹색 계열의 비단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데, 보통 겉감을 녹색으로 하고 홍색으로 안감을 합니다. 그러나 계절에 따라 사용하는 직물이 다르고 구성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출토지 미상의 이 당의는 홑당의 일종인 ‘깎은 당한삼’입니다. 솔기가 꺾은 듯이 가늘다는 뜻으로 주로 여름에 입는 당의입니다. 옛 자료에 따르면 궁중에서 자주 착용했던 옷으로 보입니다. 조선시대 왕실 비빈(妃嬪)들의 사계절 복식 지침서인 《사절복색자장요람(四節服色自藏要覽)》에는 “5월 단오에 초록 광사(光絲)로 만든 깎은 당한삼을 입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깎은 당한삼의 제작 방식은 일반 당의와 같으나 옷의 끝 부분을 두 번 접어 박지 않고 손가락으로 돌돌 말아가며 감침질하는 특별한 바느질법을 사용합니다. 이렇게 바느질을 하면 앞자락의 양쪽 끝이 뾰족하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안쪽으로 자연스럽게 말려 들어가 둥근 선이 나오게 됩니다. 초(綃)라고 하는 염색이나 표백을 하지 않은 생사로 짠 평직(平織) 직물로 만들었습니다.

 

이 직물은 얇고 가벼워서 여름용 옷에 많이 씁니다. 날실을 2올씩 한 조로 하여 사이를 약간씩 띄어 변화를 준 것이 특징입니다. 이렇게 간격에 변화를 주면 시각적으로 줄무늬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직물과 관련해서, 1409년(태종 9)에 부녀자와 노비 의복에는 초(綃)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願自今大小婦女從婢之服, 不許襖裙; 其笠帽則只用苧布, 不許羅綃” 《태종실록(太宗實錄)》 태종 9년(1409)]

 

또 불전(佛殿)에 시주하거나 임금이 특별히 하사하는 품목 가운데 하나로 기록되어 고급 견직물에 해당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佛前布施用綃” 《태종실록(太宗實錄)》 태종 11년(1411)]

 

두 번째로 소개하는 당의는 청연군주(淸衍郡主)의 두벌당의입니다.

 

 

청연군주(1754~1821)는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맏딸이자 정조의 누이입니다. 군주(郡主)는 왕세자의 정실(正室)에게서 난 딸에게 주는 정2품 봉작(封爵)입니다. 그녀는 맏딸로 위로는 정조(正祖, 1752~1800), 아래로는 청선군주(淸璿郡主)가 있었습니다.

 

1963년 경기도 광주에서 청연군주와 부군 김기성(金箕性, 1752~1811)의 합장묘를 이장하던 중 옷과 부장품(副葬品)이 약 200여 점 출토되었습니다. 거둔 이 옷들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과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고려대학교박물관, 세종대학교박물관에 나뉘어 소장되어 있습니다. 왕실의 공주였던 만큼 그녀의 당의에는 금실을 넣어 짠 석류와 칠보, ‘壽(수)’, ‘福(복)’ 등 글자와 무늬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습니다.

 

 

무늬 부분은 편금사(片金絲)를 실과 함께 짠 것으로, 편금사는 종이 위에 접착제를 바르고 그 위에 금박을 올려 건조한 후 일정한 너비로 자른 금사를 말합니다.

 

당의 크기로 미루어 보아 청연군주가 5~6살 무렵 입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형태를 살펴보면 앞서 소개한 당의에 견주어 전체적인 길이가 짧아지고 소매통이나 깃, 품 등이 급격하게 좁아졌습니다. 18세기는 저고리가 가슴부분까지 짧아지고 소매가 좁아지는 등 전체적으로 옷이 작아집니다. 따라서 이 당의에도 18세기 저고리의 특징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청연군주 당의는 안감과 겉감으로 구성된 겹당의 두 벌을 겹쳐서 일부분만을 박아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이를 ‘두벌당의’라고도 하며 안쪽에 해당하는 것을 ‘내작(內作)’이라고 합니다.

 

1893년 의화군(義和君) 이강(李岡,1877~1955)의 길례시 입었던 의복목록인 「계사십월길례 의복발기」에는 ‘초록금수복자당저고리’와 ‘다홍별문단내작’ 등이 보입니다. 이렇게 당의를 겹쳐서 입는 방법은 주로 왕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착용방식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복으로서 당의는 왕실 기록뿐만 아니라 18세기 앞뒤 문집에도 다양한 기록이 보입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당시 여성들의 짧은 저고리와 긴 치마를 비판하면서 예법에 맞는 옷차림으로 당의 착용을 권하는 내용입니다. 당시 의생활과 당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지금 부인들의 옷 제도를 보면 날로 짧고 작아지는 추세인데 괴이하다... (중간 줄임) 항상 당의를 입게 한다면 비록 일일이 옛 제도에 합치되지는 못하지만 노나라의 제도 정도로는 삼을 수 있다.’ 송문흠(宋文欽, 1710~1752), 《한정당집(閒靜堂集)》 7권

 

                            * 국립중앙박물관(민보라) 제공

                           위 내용과 자료는 국립중앙박물관의 허락 없이 가져가실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