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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엄마야 누나야’, 합창단과 함께 부를 터

[대담] 일본조선족예술단 김경자 단장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갈이 만난 둘째 배달문화는 일본 도쿄의 김경자 일본조선족예술단장이다. 김 단장은 연변 조선족 동포로 19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까지 연변을 뒤흔들어 놓은 유명가수였다. 그 뒤 일본으로 건너가 한동안 잠잠 했었는데 2007년, “쉼터 제1회 일본조선족노래자랑대잔치”에 초대가수로 초청받고 다시 무대에 섰다. 이후 다시 가수로 명성을 날렸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에 더하여 우리문화신문 일본 도쿄지사장에 취임했다. 우리 민족의 문화를 알려내는 일에 새롭게 뛰어드는 것이다. 김단장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일을 하는지 만나보았다.

 

- 가수로서 일본ㆍ중국ㆍ한국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어떻게 가수가 되었나?

 

“동네방네에서 유행가시조인 가수 “백년설”이 살아서 돌아온 분이라는 소문이 날 정도였던 아버지의 DNA를 타고 났던지 대학시절 대학가요제에 나가 노래하면서 노래 잘한다는 소문이 났었다. 내가 직접 작사하고, 연변대학교 예술학원의 리정이란 학생이 작곡해준 노래 ”소녀의 사랑은“도 부르기도 했다. 그러면서 노래가 하고픈 나머지 대학생 때인 1985년 연변방송국의 문을 두드렸다.

 

그때 방송국 음악편집부에 있던 석화 선생님이 가사를 쓰고 고창모 선생님이 작곡을 해서 “돌다리”와 “동그라미”라는 노래를 만들어 주었고, 이 노래를 약간의 율동과 함께 방송에서 불렀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특히 “돌다리” 노래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돌 기념문예작품평의’와 같은 여러 작품평의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대학 졸업 뒤 연길방송국 기자로 근무하면서 밤엔 업소에서 노래를 부르며 가수 활동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노래를 만들어준 두 분의 선생님은 가수 김경자를 만들어 주신 분이다.“

 

-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는가?

 

“내가 한 업소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그 자리에는 연변대학 주최 ‘국제고려학회’ 참가차 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 내 노래를 들었던 지금의 남편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는데 남편은 일본으로 돌아간 뒤 매일 국제전화를 걸어왔고, 그 뒤 가까워졌던 우리는 혼인하게 되었다. 약간은 가수 생활이 힘들기도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일본 도쿄로 가 가정주부로서만 살았었다. 그러다가 2007년, “쉼터 제1회 일본조선족노래자랑대잔치”에 초대가수로 초청 받은 뒤 다시 무대에 서게 되었다.

 

- 일본조선족민족예술단은 어떤 단체이며 남의 나라에 살면서 배달겨레로서의 긍지를 잊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연변조선족은 일본에 건너와 사는 사람이 꽤 많다. 그런 우리가 사단법인 일본조선족문화교류협회를 만들었는데 이 협회 산하에 예술인들이 모여 일본조선족예술단을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 조선족은 우리말과 중국어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자부심들을 가지고 있고, 당당한 자세를 가지고 있을 때 남의 나라에서도 당당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 뜻에서 문화교류협회도 조선족예술단을 만들었고,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 “돌다리”라는 이름의 노래는 현재 연변명곡 명단에 오른 작품이라고 들었다.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김경자 다운 노래는 무엇이라 생각하고 그 까닭은 무엇인가?

 

“연변에 있을 때 불렀던 노래들이 명곡 명단에 오르기는 했지만 지금 들으면 여러 모로 부족한 노래여서 부끄럽다.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하여 정말 명곡다운 명곡을 만들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이선희의 ‘인연’, 박정식의 ‘천년바위’ 등과 김소월 시로 만든 ‘엄마야 누나야’를 합창단과 함께 부르고 싶다. 또 석화 선생님의 동요도 부르고 싶다.”

 

- 최근 우리문화신문 일본 도쿄지사장이 되었는데 어떤 마음으로 지사장이 되었으며, 어떤 활동을 할 각오인가? 또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도쿄지사장을 맡겨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자금심을 가지고 신문에 일본에 사는 조선족들의 살아가는 얘기를 전하겠다. 또 한국 문화인들과의 교류도 열심히 할 생각이고, 어떻게 우리문화신문에 이바지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조선족문화재단을 만들 생각이다. 이로서 신문은 물론 문화인들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김경자 단장을 소개한 사람은 우리문화신문 중국 연변지사장 석화시인이다. 석화 시인은 김경자 시인에 대해 “1980년대, 애교 넘치고 정감 있는 목소리와 방글방글 웃는 산뜻한 표현으로 음악방송계에 반짝이는 별처럼 떠올라 대뜸 인기가수의 반열에 오른 가수”라 말한다.

 

또 그는 “김경자 가수는 엔카 ‘아카사카 우키우키’를 불러 많은 팬들이 열광적으로 사랑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 오사카와 고베의 텔레비전 프로에 여러 번 초청받아 출현했고, 지난 2010년 춘절을 맞이하여 일본의 대표적인 신문인 ‘아시히신문’은 ‘일본에서 활동하는 조선족가수’라는 제목으로 김경자 가수를 소개하는 특별기고문을 싣기도 하였다.“면서 ”지금 김경자 가수는 연변 또는 중국조선족가수의 경계를 훨씬 뛰어넘어 중국대륙을 비롯하여 일본, 한국과 대만 그리고 동남아 여러 곳으로 예술의 경계를 확장하여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우리 팬들은 이제 박수칠 일만 남았다.“라고 말한다.